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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상 이야기_designer's desk & essay(책상이 있는 풍경) 조회수 17696

당신에게 책상은 무엇인가.
항상 곁에 있기 때문에 소중한지 모르는 것 중 하나가 책상일 것이다. 그 책상을 왜 구입했는지, 책상 위에는 무엇이 놓여 있는지, 책상과 함께 무엇을 하는지 생각해 본다면 책상이 가지는 의미는 그 이상일 것이다. 디자이너에게 책상은 가장 미니멀한 작업실이면서 매일매일 함께하는 동반자다.
작업 구상에서부터 시작 그리고 끝맺음에 이르기까지 쉴새없이 머리와 눈 그리고 손은 책상 위에서 바삐 움직인다. 열정과 함께 수반된 고단함, 피곤함을 잊게 하는 소소한 즐거움, 그리고 지친 마음을 다독여주는 익숙함이 내려앉은 책상. 한 해를 정리하는 12월, 올해도 바쁘게 움직였을 디자이너들의 제각기 다른 색을 지닌 책상을 들여다본다.


하루 중 내가 책상 앞에 앉아 보내는 시간을 헤아려 본다면 책상은 거의 내 신체의 연장선상에 놓인 물건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바로 책상 앞에 앉는 일이며, 하루종일 일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 또한 책상 앞이며, 저녁에 잠들기 직전까지 내가 시간을 보내는 곳 역시 책상 앞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헤아려 책상과 나의 신체가 접촉해 있던 시간을 계산해 보면 내 삶의 대부분이 책상 앞에서 보낸 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글ㅣ 이나미 스튜디오 바프 대표

책상의 연장선상에는 나의 노트북이 있다. 컴퓨터라는 것이 디자이너의 일상 깊이 자리잡고 난 다음부터 컴퓨터(나는 노트북을 사용한다)는 내 인생의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엄밀히 말하면 노트북은 내 머리의 연장선상에 놓인 물건이니 대상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내 생각을 펼쳐 구체화하는 작업을 하는 시간이니 나 자신과 더불어 노는 시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와 같은 ‘놀이’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놀이터가 바로 책상인 것이다.
이렇게 하루 동안 내 몸을 의지할 수 있도록 내 신체의 연장선상에 놓인 물건이 책상이라면 노트북은 내 손 끝의 연장선상, 내 머리의 연장선상에 자라나 있는 듯한 또 다른 물건인 셈이니 결국 나와 노트북과 책상은 모두가 한몸이다.


책상 위에는 언제나 틈입자가 있다. 나와 한몸인 노트북과 책상만의 호젓한 공간을 도무지 허락하지 않는 것이 있다. 미처 열어보지도 못한 채 쌓여가는 우편물들과 근간에 꼭 살펴보겠다고 마음만 먹은 채 긴 시간 방치되어온 책들, 꼭 종이로 프린트하여 보관하지 않아도 좋을 법한 이런저런 작업 파일들과 내 것은 분명 아닌데 도대체 언제 어디서 건너왔는지 알 수 없는 수없이 많은 필기구들. 오금이 저리도록 시간과 사투를 벌인 밤샘작업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커피잔들이 종종 여기에 가담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나와 노트북과 책상은 종종 틈입자들이 남겨놓은 최소한의 공간만을 이용하여 셋방살이를 하듯 옹색한 살림을 살기도 한다.


때로는 어느 사이엔가 책상 앞에 몸을 끌어다 붙이고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한다. 컴퓨터와의 창의적 놀이도, 시간을 다투는 밤샘작업도 아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순간에도 나는 어느 사이엔가 책상 앞에 몸을 끌어다 붙이고 앉아 있다. 책상 위에서 무엇을 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멍하니 머리 속을 드나드는 이런저런 생각들에 몰두해 있는 것. 이런 순간에 책상은 그저 내 턱을 고이고 있거나 내 손과 팔을 위한 받침대가 되어준다. 내 머리와 내 육체를 온전히 기댈 수 있는 조건없는 휴식처가 되어준다.


책상은 책상이되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책상은 의자가 필요치 않은 앉은뱅이 책상이다. 몸을 낮추어 조촐하고도 넉넉한 마음으로 기꺼이 내 신체의 연장선상이 되어 나를 품어줄 수 있는 책상이 좋다. 그 밑으로 다리를 편히 뻗을 수 있게 해주는, 좀 더 허물없는 사이가 되어 아예 길게 몸을 뻗고 누워버릴 수도 있게 해주는 그런 책상. 진정으로 내 육체와 정신의 놀이터이며 휴식처가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책상을 나는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