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방문한 친구이자 벨기에 디자이너인 크리스티앙을 위해 서울의 비밀스런 트렌드 공간을 소개한다. 2년 만의 방문인데다 빠르게 변하고 있는 서울인지라 크리스티앙이 보지 못하고 놓쳤던 공간들을 모았다. 내가 특별하다고 소문난 공간을 찾아다닐 정도의 정력가는 아니기에 내 생활 반경 내에서 우연히 발견한 좋은 공간이나 지인들의 작업공간 등을 모았다. 크리스티앙의 홀로 서울디자인여행을 위해 섬세하고 친절하게 공간을 묘사한 편지와 몇 장의 단서가 될 만한 사진들을 공개한다.
글 ㅣ 홍석우(패션 칼럼니스트) 사진 ㅣ 스튜디오 salt 진행 ㅣ 이동숙 기자
서상영 쇼룸 Suh Sangyoung Showroom 서상영은 2004년 가을, 첫 번째 컬렉션을 시작해서 이제 곧 10번째 컬렉션을 맞이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젊은 패션디자이너야. 그의 작업실 겸 쇼룸은 처음 방문하는 사람에게는 꽤 찾기 어려우니까, 도산공원 앞 ‘느리게 걷기’ 앞에서 쇼룸에 전화를 해보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지. 그가 걸어온 길은 한국의 패션디자이너 사이에서도 참신하고 독특한 길이었다고 할 수 있어. 데뷔 컬렉션을 런웨이가 아닌 영상으로 만들어 극장에서 상영했고, 한국 최초로 인터넷을 통한 실시간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지. 공간에 대한 선견지명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지금만큼 번잡스럽지 않던 시절 신사동 가로수길에 첫 매장을 냈던 것도 그랬고, 아직 도산공원 앞에 커다란 매장들이 생기기 전인 2006년에 이미 도산공원 앞에 작업실을 옮긴 것도 그랬고. 빌딩 정문 앞 금속 재질의 견출지 마크가 없다면 과연 어디 있는 것인지 찾기도 힘든 그의 쇼룸은 옷만큼 소박하고 재미있는 오브제들로 구성되어 있어. 크리스티앙도 옷을 만드니까 매장에 들려 그와 커피 한잔하며 얘기하면 분명 즐거울 거야.
강남구 신사동 631-15 지하1층 //www.suhsangyoung.com
휴먼 트리 Human Tree 신사동 캘리포니아 휘트니스 건물에서 나이키 F2 매장 건너편 건물 4층으로 쭉 올라가면, 휴먼트리를 만날 수 있어. 휴먼트리는 수년 전부터 꾸준히 해외 스트리트 패션을 국내에 소개하고, 자신들의 레이블을 만들어 옷과 액세서리를 제작하고 작은 전시나 파티를 개최하는 등 한국의 스트리트 패션과 문화를 대표하는 곳 중 하나지. 2007년 가을부터 휴먼트리의 단독 레이블 ‘버리드 얼라이브(Buried Alive)’로 국내외 다른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와 공동작업한 의류나 액세서리를 발매하는 등, 꾸준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공간이야. 오너이자 대표인 김종선(Jayass)은 참 유쾌한 남자인데, 그의 직업이 숍 오너가 아니라 전업 블로거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을 만큼 그의 블로그Jayass.co.kr을 보는 재미도 쏠쏠해.
강남구 신사동 653-1 4층 //humantree.co.kr
아름다운가게 헌책방 광화문점 크리스티앙, 종로는 아마 처음이지? 지하철 종각역에서 광화문 교보문고를 향해 걷다 보면 크라운베이커리와 이제 막 완공한 거대 오피스텔 사이에 작은 횡단보도가 있어. 횡단보도를 건넌 다음 오른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나무 표지판에 ‘아름다운가게 헌책방, 3층’이라 적힌 팻말이 보일 거야. 아름다운가게는 안트워프에도 종종 눈에 띄는 세컨핸즈숍과 비슷한 개념인데, 다른 게 있다면 시민들로부터 자발적인 기증을 받아 쓰지 않는 물건과 옷을 판매하고 그 수익금으로 불우이웃을 돕는 좋은 취지의 매장이라는 거야. 그중에서도 아름다운가게 헌책방은 ‘책’에 집중해서, 무려 2만여 점의 책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곳이지. 요즘 서울에서는 책을 사려면 인터넷이나 대형서점에 가야 해. 흔히 보이던 동네 서점이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거든. 하지만 이곳은 내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꽤 많은 책을 여기서 구입하고 있어. 손때 나는 종이도 좋고 문고판 서적도 좋고, 1990년대에 절판된 희귀한 잡지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거든. 오래된 잡지나 만화책을 보며 낄낄거릴 수 있는데다, 책을 구입하면서 불우이웃도 도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나는 여기서 문고판 고 피천득 선생의 수필집, 철 지나 구하기 힘들었던 좋아하는 사진가의 도록, 수많은 독립 개발자들의 영어 폰트가 담긴 폰트북이랑 드래곤볼 애장판 전권을 구입했어. 크리스티앙도 좋아하는 프란츠 카프카의 마지막 소설도 여기서 만날 수 있지. 종로는 큰 길에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이 공간은 그 안에서 분리된 것만 같은 멋진 곳이야. 꼭 가보길.
//www.beautifulstore.org/
데일리 프로젝트 Daily Projects 크리스티앙이 서울에 왔던 게 꽤 오래전이고 나도 아직 데일리 프로젝트에서 일하기 전이니까, 이번에 오게 되면 내가 일하는 곳은 첫 방문이겠다. 데일리 프로젝트는 청담동 학동사거리의 ㈜이동수F&G빌딩 1층과 2층에 2007년 7월에 문을 연 공간이야. 청담동과 압구정동, 신사동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묘한 존재감을 가지는 이 곳은 내가 바이어로 일하는 곳이기도 하고. 세계의 디자이너 의류를 판매하는 편집매장과 작은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와 책을 볼 수 있는 카페 로프트(Loft)로 구성되어 있지. 물론 지난 파리 출장에서 우리가 주문한 크리스티앙의 옷을 판매하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공간은 편집매장과 카페 로프트인데, 편집매장에서 우리가 고심하며 선택한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들의 옷을 소개한다는 것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어. 카페 로트프는 일종의 책을 볼 수 있는 라운지인데, 내가 직접 연락을 주고받아 받게 된 훌륭한 출판물을 여기서 만날 수 있지. 나는 독립 출판사가 만드는 출판물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어서 데일리 프로젝트에서 그들의 책을 소개하고, 사람들이 구입할 수 있는 자리를 지속적으로 만들 생각이야. 크리스티앙도 옷만큼 아트북이나 잡지에 관심이 많으니까, 아마 굉장히 좋아할 거야. 물론 네 옷이 걸린 숍을 보는 것도 큰 기쁨이겠지?
강남구 청담동 1-24 www.dailyprojects.kr
센세이숀패숀/챠아-밍 다방 by micro/weiv 한국예술종합대학이 위치한 석관동 근처에 기반을 가지는 마이크로웨이브는 ‘장소특정적’ 작업을 하는 아트 집단(art collective)이야. 설립자 중 한 명인 유병서와 이랑은 특정한 문화 지역이 아닌 자신이 거주하고 생활하는 동네에서 문화적인 움직임을 만들길 원했고, ‘독립적이고도 자생적인 생산구조, 문화운동의 한 형태를 위해’ 성북구 석관동에 센세이숀패숀/챠아-밍 다방을 열었어. 가게 이름처럼 이곳은 빈티지 의류와 액세서리를 구입하거나, 차를 마시며 쉴 수 있는 공간이야. 크리스티앙처럼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 사람들이 특정한 몇몇 장소만 가는 게 나는 내심 아쉬웠거든. 그래서 이처럼 정말 서울답고 동네 친화적인 공간이 더욱 많아지면 좋겠어. 무언가 치장하지 않고도 자연스러운 우리 삶에 더 가까운 공간들에 작은 재미가 생기고 더 자연스럽고 자발적일 수 있는데다, 굳이 홍대나 삼청동까지 나서지 않아도 될 테니까.
성북구 석관동 센세이숀패숀/챠아-밍 다방 www.microweiv.net
아뜰리에 에르메스 Atelier Hermes 프랑스의 가죽용품과 기성복 전문 브랜드 에르메스(Hermes)가 도산공원 앞에 ‘메종에르메스 도산파크’를 연 게 2006년 가을이야. 이곳은 지난 번에도 들렸었지? 아마도 그때는 3층에 있던 갤러리에는 가지 않았던 것 같아. 나선형 계단까지 에르메스제 가죽으로 감싼 이 건물 3층에 아뜰리에 에르메스라는 갤러리가 있어.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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