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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프로젝트 그룹(크다 혹은 작다) 조회수 16586
최근 디자이너들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소속’ 보다는 ‘독립’ 을 선택한 프리랜스 디자이너들의 눈부신 활약은 이미 수 차례 소개해온 바다. 그런데 소속과 독립을 동시에 선택한 이들이 디자인 흐름을 변화시키고 있다.
일종의 ‘따로 또 같이’ 형태를 띠면서 공동의 프로젝트를 위해 각기 다른 매력을 집결시킨 디자인 프로젝트 그룹. 실험적인 이들의 움직임은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안할 뿐 아니라 진정한 ‘소통’을 통해 그들만의 소신있는 디자인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가치와 재능은 ‘의도하지 않은 시너지’를 발생시키고 고정관념을 깨는 혁신적인 비주얼을 생산한다. 둘 혹은 여럿이라 외롭지 않은 독립군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디자인 그룹을 만나 본다.


디자인 그룹은 개개인이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프리랜스와 수주를 중심으로 좀 더 거대하게 움직이는 회사, 그 가운데 존재할까? 만일 이성적으로 디자인그룹을 위치시킨다면 프리랜스와 회사의 장단점을 합친 좀 더 유연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디자인 그룹은 프리랜스보다는 좀 더 안정적일 수 있고, 회사보다는 훨씬 가볍다는 나름의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상업과 비상업을 오갈 수 있고 부드러운 컨펌 라인을 갖고 있다. 스트레스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기에 ‘가슴’으로 일할 수 있고 진심과 애정을 담는 것도 더 수월하다. 물론 어려움에 봉착할 때도 있다. 거대한 클라이언트를 상대할 때, 특히 내실보다는 부피와 배경에 집착하는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 A부터 Z까지의 매뉴얼이 확고한 비즈니스와 마주칠 때면 감출 수 없는 식은땀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현상이 오늘날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디자인 비즈니스의 격전장인 뉴욕의 무수한 디자인회사들도 대부분 그룹 개념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출발했다. 이는 현재도 여전하고 알렉세이 브로도비치가 미국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도 그러했다. 그렇게 일을 시작하다 보니 프로젝트가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고, 마음이 맞는 친구와 동업을 하게 되었고, 그리고 수백 명의 직원을 가진 회사로 커나갔다. 이는 하나의 수순일까? 디자인의 가치가 팽창하기 바빴던 과거에 그러했고, 오늘날 한국 디자인 시장에도 이런 현상을 목격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를테면 웹 에이전시들은 어쩌다 그렇게 많은 직원을 갖게 되었으며 어디에서 출발한 것일까?

웹이나 GUI처럼 새로운 시장이 생겨나는 분야에선 과거의 성장 혹은 성공 스토리를 적용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미 견고하게 다듬어진 다른 분야와 관련해 ‘작은 소년이 아더왕이 되는 이야기’는 허황된 꿈에 불과하다. 물론 모든 디자인 그룹이 결국 이 좌절된 꿈 때문에 부피 늘리기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이들은 부피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원인은 세상을 보는 눈이 다양해졌고, 이해심이 풍부해졌기 때문이다. 디자인에서 시장의 논리와 습득된 매뉴얼만으로는 해석될 수 없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모든 디자이너들이 반드시 아더왕이 되는 꿈을 꾸는 것도 아니다. 비즈니스와 결탁한 디자인을 선택했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주관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로서 그들은 스스로를 빛낼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는 것이 더 맞다.
현재는 아티스트와 디자인 그룹의 모호한 단계에 놓여 있지만, 어쨌든 위대한 크리에이터로 기억될 파리의 ‘MM’은 그 많은 전시와 프로젝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규모로 움직이고 있다.
일본에서 출판되는 많은 패션 잡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하고 있는 히데키 이나바도 외주 인력과의 탄탄한 관계를 바탕으로 일하며 그를 제외한 내부 디자이너는 단둘뿐이다. 이렇듯 다양한 개성과 창의력이 시장과 동등하게 존재하는 유럽이나 일본에선 이러한 소규모 디자인 그룹이 흔한 편이다. 런던이나 암스테르담에 가면 거인이나 다름없는 파비언 배런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디자인 그룹을 만나는 일이 차라리 더 쉽다.

이들에게 ‘관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도쿄의 히데키 이나바나 나기 노다가 들쭉날쭉한 프로젝트의 성격에 관계없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창조’에만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것은 실무를 담당해주는 든든한 지원군 덕분이다. 현재 라는 독특한 남성지로 단숨에 그래픽디자인업계 상위 리스트에 오른 덴마크의 ‘홈워크’는 이를 테면 ‘Unique’라는 모델 에이전시와 클라이언트 이상의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이 개척하고 있는 ‘데니쉬 패션 매거진’ 시장을 고려할 때 모델을 지원해줄 수 있는 이 관계가 얼마나 유용할지 상상해볼 수 있다.
심지어 나사의 우주선이 다음 디자인 목표라고 말했던 파비언 배런조차 웹과 관련해서는 ‘Createthe’라는 그룹과 긴밀한 협조체계 아래 작업하고 있고, 다시 Createthe의 클라이언트 가운데 패션 브랜드 ‘미우미우’는 파리의 감각적인 디자인 그룹 ‘Work in Progress’의 아트 디렉팅을 바탕으로 작업되었다.

이처럼 오늘날 디자인은 과거와 같이 펜과 잉크로 웬만큼 완성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 있다. 현재 디자인이 모든 분야에 능숙하다는 것은 자랑인 한편, 불신의 씨앗이 될 수밖에 없다. 디자인 그룹은 이렇듯 격변하는 환경에 대한 해답이다. 부피를 늘리는 것이 어리석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는 그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 뿐이다. 가장 유연하고 가장 적절하게 능숙한 친구들과 손을 꼭 잡고 계주를 뛰는 것과 같다. 앞서 언급했지만 덕분에 진심을 담는 일, 진심을 담아 소통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다행인 것은 한국에도 이러한 진심을 볼 줄 아는 클라이언트들이 크기에 연연하지 않고 조금씩 더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글ㅣ 박창용 모임 별, 그래픽디자이너


*박창용은 2002년부터 모임 별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비디오, 웹 등 그래픽 디자인 전반에 관련한 작업을 하고 있다. 2003년, 레스페스트의 폐막식이기도 했던 벨기에 아티스트 랩오(lab[au])와의 전시에서 실시간 비디오 영상 제작을 담당하였고, 2006년부터는 모임 별과는 또 다른 성격의 본격 디자인 그룹, byul & associates.co 를 통해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 송자인, 송지오의 전반적인 아트 디렉팅을 담당하였다. 2008년, 채널 동아의 컬렉션북 리뉴얼 작업에 아트디렉터로서 참여하기도 했다. 2005년부터 하퍼스 바자에 byul & associates.co의 멤버로서 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