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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칠하지 못하게 칠 조회수 16591
“젊은 처녀가 하고 다니는 꼴이 도대체 그게 뭐니? 칠칠맞지 못하게.” 인터넷 국어사전에서 ‘칠칠맞다’를 검색하면 뜨는 예문이다. 매거진 ‘칠’을 만드는 여자 셋 허지현, 윤재원, 이마야의 거침없는 행보를 이야기하자니, 어르신들 열에 아홉은 위 예문을 합창할 지경인데….

이름있는 미술 대학을 졸업한 뒤 미술계에 진입하는 대신, 언더그라운드 컬쳐 매거진을 만들고 있는 스물 대여섯살 세 여자는 이렇게 응수한다. “가끔 칠칠맞지 못하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면서 다같이 '칠 아웃(chill out)' 합시다!”

취재 | 이상현 기자 (shlee@jungle.co.kr)
사진 | 스튜디오 salt


시장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자유분방한 주제, 고정관념을 깨는 혁신적인 비주얼 등 독립 출판물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기름진 콘텐츠는, 기성화된 문화를 비옥하게 일구는 거름 역할을 한다. ‘다행히’ 국내에서도 서너 명의 인원이 소규모 프로젝트 그룹을 이뤄 독립 매거진을 제작, 저마다 특별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는데(더매뉴얼, 워킹매거진, 월간뱀파이어 등) 그 가운데 잡지 ‘칠’의 존재가 유독 돋보인다.

일단은 그 외모부터 튄다. ‘무심한 듯 시크한’ 도시의 멋쟁이라면 칠의 촌스러운 자태에 코웃음을 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키치적 감수성을, 칠이 취하는 미학적 태도와 방법론으로 이해하면 어떨까. “심각한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혹은 웃기고 이상하게 풀어내는 게 저희 잡지의 매력이지요.” 이렇듯 촌스러움의 미학으로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날 것 그대로 생생하게 중계해온 칠은, 세련된 기성 잡지들로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어떤 진정성에 바투 다가서 있다.




예를 들어 가장 최신호인 3호의 이슈 ‘어르신들’을 살펴보자면, 노인 소외 문제를 천연덕스러운 ‘재롱’으로 풀어내는 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종로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말벗을 자처하고, 멋들어지게 기념사진도 한장 찍고, 급기야 국일관 콜라텍에 잠입해 어울려 다이아몬드 스텝을 밝는 게, 노인 소외 문제에 다가가는 칠의 진심 어린 방식인 것이다. “가능하면 유행을 따라가지 말자고 처음부터 약속을 했어요. 포장하고 멋 부릴 바에 차라리 어이없게 가자고.”


정마담은 이대 나온 여자고, 칠의 세 여자는 ‘홍대 미대 나온 여자’들이다. 지금 시대에서 예술가로 살아남기 위해선 작업 이전에 얼마나 번지르르 말을 잘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만, 사실 그게 싫어서, 칠이라는 탈출구를 찾아냈다는 세 사람. 진정한 예술은 강의실과 전시장, 도서관이 아니라 바로 삶의 복판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칠을 통해 그 현장 속으로 직입했다. 다행히 같은 고민을 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애쓰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힘을 얻고 큰 걸음을 뗄 수 있었다.

그간 국내 아티스트는 물론 평소 지지하던 타국의 작가에게도 메일을 보내 작품을 게재하며 칠만의 색깔과 게토를 지켜왔던 것. Kew Yearn Chung, Shoboshobo, Vice, DOKKEBI Q 등이 바로 칠의 친구들이다. 또한 발달된 팬진 문화로 나름의 성역을 이루고 있는 해외 독립 매거진들과의 긴밀한 네트워킹을 이어가면서, 이미 여러 차례 그간의 작업이 ‘월드 와이드’하게 소개돼 세계가 주목하는 독립 매거진으로도 성장 중이다.



연남동 작업실에서 스물 대여섯살 세 여자가 뚝딱뚝딱 만들어낸 잡지 칠. 과도한 해석과 지나친 엄숙주의의 이 시대를 칠칠맞지 못한 행보로 비꼬아왔던 칠.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지 자못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