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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쳐라, 흐름을 만들어라 조회수 15896

최근 비슷한 규모와 공통의 목적을 공유하는, 개인 디자이너나 소규모 디자이너 브랜드들의 연대가 눈에 띈다. 골리앗과 같은 막강한 자본의 기업 브랜드에 대응해서 이들이 힘을 모아 힘차게 돌리고 있는 ‘다윗의 돌팔매질’은, 그러나 상대를 넘어뜨리는 회심의 일격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 듯 보인다. 이는 그 자체로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눈부신 움직임일 뿐이다.

에디터 이상현(shlee@jungle.co.kr) | 사진 스튜디오 salt



바야흐로 대기업의 멀티 플렉스 영화관이 단관 영화관을 조용히 삼키며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때 기존 영화관들이 서둘러 멀티 플렉스로 변모하면서 가까스로 경쟁력 회복을 모색했던 반면, 이 흐름에 편승하지 못한 소규모 예술영화 전용관은 곧 사멸될 운명, 불우한 미래에 처했었다. 하지만 스폰지하우스 등 전국의 예술영화 전용관들은 ‘아트플러스 시네마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예술영화 전용관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낸다. 이들의 단체 행동은 다양성영화를 선호하는 관객들을 본격적으로 극장에 불러모으고, 마니아를 양산하며, 고정 관객을 확보하는 결과를 도출해냈다. 멀티 플렉스 영화관이 쫓을 수 없는, 예술영화 전용관만의 문화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렇게 영화판 이야기를 장황하게 떠든 이유는, 마찬가지로 최근 소규모 디자이너 브랜드들의 연대를 단순히 기업 브랜드와의 경쟁을 위한 ‘몸집 불리기’로 파악하면 곤란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이들의 움직임은 기업 브랜드가 시장을 주도하는 거대한 판도에 역류하는 흐름으로서, 경쟁과는 별개로 그 새로운 흐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더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비로소 브랜드와 소비자가 어우러져 그들만의 오롯한 문화가 형성되었을 때, 그것은 ‘대세’가 될 것이다. 아직은 그 미래를 알 수 없지만 작금의 소규모 디자이너 브랜드의 연대가 조심스레 기대되는 바다.



작년 시작된 a.a.a.a(another, attempt, and, adventure) 컬렉션은, 신진 패션디자이너 브랜드의 연합 패션쇼다. 브랜드 홍보 기회가 비교적 적을 수 밖에 없는, 더욱이 개인 패션쇼를 열거나 서울컬렉션 등 기성 컬렉션 참가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신진 패션 디자이너들이 뭉쳐 스스로를 알리는 장을 마련한 것이다. 일반 관객은 물론 패션지 기자, 멀티숍 바이어 등을 초대해 그 역량을 검증 받고 브랜드를 홍보하며, 유통 활로를 모색해보는 자리로서, 내적으로는 동대문 카피 시장과 하이엔드의 명품 시장으로 양극화되고 있는 국내 패션 시장에서, 무언가 다른 패션을 시도하려는 국내 젊은 패션 디자이너들의 새로운 움직임을 널리 알리는 목표를 품고 있기도 하다.

지난 8월 열린 a.a.a.a의 두 번째 컬렉션은 1회 컬렉션 참가 브랜드인 헤녹(Henooc), 소울팟(Soulpot), 언드미드레스(Undemi1/2dress), 파인애즈와인(Fine as wine), 바운시그레이(Bouncygray) 등이 거듭 컬렉션을 주도했으며 진희경(ZHin,heekyung), 누솜(Nous sommes l’histoire) 등도 함께 참여해 총 10여개 브랜드가 a.a.a.a 컬렉션이라는 새로운 물결에 몸을 실었다. 특히 엔주반 남성복라인의 수석 디렉터였던 송승렬이 런칭한 8C11C, 푸쉬버튼과 veto를 거쳐 브랜드를 런칭한 예란지의 켄타우르스(the centaur) 등이 젊은 디자이너의 재기와 발랄을 유감없이 보여준 컬렉션으로 평가를 받으며 a.a.a.a. 컬렉션에 대한 대중과 평단, 비즈니스 계의 기대를 증폭시켰다.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는 레이블의 신선한 공간”이라는 a.a.a.a 컬렉션의 자평 그대로, 이들은 평범한 패션쇼를 거부한다. 캣워크 뿐 아니라 다양한 방식의 전시를 통해 남다른 프레젠테이션을 고민하는 것. 바운시그레이는 설치 미술로, 소울팟은 실험적인 영상으로, 누솜은 일러스트레이터 김아람의 페인팅과 함께 전시로, 헤눅은 카탈로그와 설치, 단편영화 제작 등 다양한 방식으로 브랜드 컨셉트와 아이덴티티를 표현했다. 8C11C를 시작으로 스타트를 끊은 캣워크에서 언드미드레스, 켄타우르스, 진희경의 컬렉션이 소개되었는데 특히 파인애즈와인은 의료기기를 활용한 퍼포먼스로 관객의 눈길을 끌었다. 다양한 장르가 크로스오버된 프레젠테이션은 관람객이 해당 브랜드의 철학과 아이덴티티를 더욱 깊게 공감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무엇보다 이번 컬렉션의 고무적인 변화는 기업의 관심이 더욱 많아졌다는 것이다. 백제예술대학 학생들이 무상으로 모델로 서서 쇼의 완성도를 높였음은 물론 사비를 탈탈 털어 진행해야 했던 1회와 비교해, 장소를 제공한 상상마당을 필두로 vodavoda, 아디다스, 백제예술대학, mbc아카데미의 후원이 이어졌는데 이는 a.a.a.a 컬렉션에 대한 기대를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브랜드 공책(o-check)의 동료 디자이너로 연은 맺은 박소영, 신설화, 지남희, 박선정이 뭉쳐 ‘32page’라는 이름의 특별한 자가 출판사를 만들었다. 32page는 이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단행본의 쪽수가 32페이지라서 지어진 단순하지만 명쾌한 타이틀. 이들은 “가능한 장식은 배제하고 책 한 권을 만드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프로세스로 최대한의 결과물을 이끌어가는 것”이 목표다.

총 4권의 32페이지짜리 책이 똑 같은 판형(B5)과 제본 방식(중철 제본)으로, 각자 주제를 달리하며 일년에 4회 발행한다(그 중 한번은 공통 주제다). 가격은 각각 4,000원으로 낱개 판매된다. 비정기 간행물을 발행하는 매거진과 구별되며 단행본 성격이 더 강하다고 하는데, 가벼워진 에세이북이나 사진집, 드로잉북을 떠올리면 되겠다. 그러나 이도 엄연한 독립 출판물로서, 여기에는 당연히 32page만의 취향과 스타일, 그리고 아젠다가 담겨있다.


지난 7월 첫 번째 책을 발행한 32page는 ‘The world of the world(박소영)’, ‘London to Paris(신설화)’, ‘THIS IS NOT THIN IS(지남희)’, ‘The people(박선정)’을 타이틀로 각각의 작업을 담아낸 4권의 책이 선보였다. 박소영은 ‘박소하다’라는 이름으로 진행했던 북 아트 작업을, 신설화는 런던과 파리 여행기를, 지남희는 개인 브랜드 THIS IS NOT THIN IS의 소개를, 박선정은 일러스트레이터로의 행보를 예고하는 일러스트를 꾹꾹 눌러 32page를 채웠다. 그리고 이렇게 눌러 담은 감성은, 벌써부터 적지 않은 반응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멀티숍 에이랜드(A.Land)의 러브콜로 발간과 동시에 첫 전시회를 가졌고, 상상마당 등의 숍과 홈페이지를 통해 지속적인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무언가 남다른 방법으로 제 작업을 보여주고 싶었고, 네 명의 친구가 함께 놀 수 있는 ‘마당’을 꿈꾸며 시작한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일이건만 비슷한 취향과 감성을 가진 이들의 공명이 일고 있다. 만약 혼자서 이 일을 진행했다면 지금과 같은 넓은 스펙트럼과 집중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비슷한 듯 다르고, 다른 듯 너무 닮은 게 많은 네 친구가 만드는 시너지인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브랜드를 알리는 등의 다소 전략적인 의도가 배제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각자 브랜드를 가지고 있거나, 브랜드 만들기를 꿈꾸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움직임이 그들만의 색깔과 문화를 만들고 알리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라는 예상도 무리는 아니다. 사실 어떤 제품을 하나 만드는 것에 앞서 필요한 것이, 과연 나만의 색깔과 문화가 무엇인지 대한 철저한 고민인데 80년대 생 어린 네 친구들은 벌써 이를 아는 듯 모르는 듯 간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