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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손글씨, 대한민국의 일상을 파고들다, 캘리그래퍼 김종건 조회수 16109
필묵은 국내 첫 캘리그래피 회사다. 1999년에 첫 발을 뗀 필묵은 2001년 윤디자인연구소에서 필서체 10종의 공동 개발을 비롯, 이후 정기적으로 전시와 워크숍 등 본격적인 활동을 통해 한글 캘리그래피의 매력을 알린 곳이다. 설립 때부터 필묵을 이끌어온 김종건은 캘리그래피에 관심있는 디자이너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통해 캘리그래피가 보다 대중들에게 가깝게 다가가도록 노력했으며, 캘리그래피를 접목시켜 한글의 다양한 활용 방안을 모색해왔다. 마침 내년 한글날, 회사 설립 10주년을 앞두고 한글과 관련한 행사를 계획 중이었다던 김종건 대표를 만나 한글과 손글씨, 그리고 필묵의 이야기를 들었다.

에디터 ㅣ 김유진, 사진ㅣ 스튜디오 salt


한글은 사람의 손과 참 잘 어울리는 글자다. 각 알파벳을 조합하여 하나의 의미단어를 완성시키는 영어와 달리 한글은 단 한 글자를 만들기 위해서도 초성, 중성, 종성과의 결합이 필요하지 않는가. 사람의 손은 이 변화무쌍한 한글의 모습을 아름답게 변모시킬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담고 있다. 종성의 유무, 모음의 결합방식에 따라 변모하는 한글의 조형성은 사람의 손과 만날 때 보다 맛깔나는 모양을 펼쳐낸다.
김종건은 바로 그 매력을 아는 사람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다녔던 서예학원에서 재능을 보이고, 대학에 입학해 전통 서예를 배우고, 군대에서 모필병을 하면서 상업서예에 대한 개념을 어렴풋이 만들어가고, 폰트회사에서 한글 서체를 개발하는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서예로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 본격적으로 고민했다고 한다. 서예보다는 상업적인, 당시만해도 낯선 영역인 캘리그래피 분야에 뛰어들어 필묵을 설립한 그는 업무 특성상 한글과의 만남이 그저 자연스러운 일었다고. 김종건이 한글에 관해, 캘리그래피에 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윤디자인연구소와 함께 필서체를 만들고 난 뒤였다. 이것이 하나의 이슈가 되자, ‘내가 하는 일이 이런 것이구나’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일까, 필묵의 활동 영역은 단순히 회사로서의 역할을 넘어선다. 둥지냉면, 봉순이 언니 등 이름만 들어도 바로 연상되는 상품 및 제품 등의 로고작업은 물론이거니와 필묵디자인전, 四春記 캘리그라피 작가 4인전, 한중일 손글씨 디자인 워크숍,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전 등 다수의 전시활동을 통해 캘리그래피의 예술적 아름다움을 꾸준히 알려왔다. 필묵 아카데미를 통해서는 교육 쪽에도 힘을 쓰고 있다.

최근에는 활자공간의 이용재 대표와 함께 방학 시즌에 맞춰 아카데미도 열었다. “한글을 진정 사랑하시는 안상수 교수님의 홍익대 대학원 수업에서 각종 한글 자료와 연구를 접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고, 정병규 선생님의 수업은 한글 손글씨의 의미나 철학적 측면을 보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표현한 그는 훈민정음 판본 연구에도 애착과 관심을 드러낸다.
이런 다각적인 관심은 캘리그래피를 대하는 그의 태도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김종건의 이야기를 들으면 옛것을 익히고 그로써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서예를 전공하고 캘리그래피를 작업하면서 그는 새로운 세 가지를 함께 고민했다. 바로 서예와 무관한 일반인 즉 대중, 컴퓨터, 그리고 디자인. 서예가 일반사람들의 일상에 파고들기 위한 방법이 캘리그래피였고, 도구적 측면에서 컴퓨터를 포함한 (문방사우가 아닌) 문방오우를 인정했으며, 캘리그래피가 글씨 자체만이 아닌 디자인이라는 맥락에서 쓰여지도록 고민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김종건의 생각 속에서 캘리그래피 뿐만 아니라 한글의 매력을 알리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캘리그래피가 일반사람들의 일상 속에 깊숙이 파고들기 위해서는 일상과의 결합을 모색해야 한다. 컵, 티셔츠, 컵받침 등을 한글 캘리그래피를 생활용품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디자인 측면의 완성도와 조화가 필요하다. 컴퓨터를 거리낌없이 받아들였던 것처럼 도구나 소재도 어떤 제약 없이 활용한다. 김종건 대표가 손에 꼽는 프로젝트 중 하나인 허브 뿌리로 쓴 ‘춤’은 스스로도 잊을 수 없는 제품이다.

지난 7월 한글테마관을 전시 기획하기도 했던 한스타일 박람회에서 선보인 어항과 물고기의 경우도 쉬운 예다. 서예의 세가지 요소인 종이, 글씨, 낙관 즉 흰색, 먹색, 붉은 색의 요소가 도자기 소재를 이용한 하얀 빛깔의 어항과 필묵의 한글 먹글씨 그리고 빨간 물고기로 형상시킨 것이다. 손글씨의 아날로그적인 면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다보면 이렇듯 누구도 쉽게 상상하지 못할 아이디어를 낸다. 태권도 유단자이기도 한 그는 문과 무를 결합하듯 한글과 춤, 무술 등 공연을 결합시키는 아이디어도 여러 방향으로 모색한다.
밀라노에서 열렸던 월페이퍼 글로벌 에디트 2006과 서울디자인페스티벌 2007을 치루면서 외국인에게 한글은 문자가 아닌 이미지로서 인식된다는 점을 가까이서 깨달으면서, 한글이 비주얼로 보여지는 방법에 대한 다양한 발상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오히려 이런 아이디어의 원천을 한글 자체에서 찾는다. 막상 한글을 소재로 여러가지 아이템들을 생각해보면 한글이 변모할 수 있는 범위는 매우 넓다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최고의 손글씨는 최고의 디자인 속에서 빛을 낼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잊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한글을 디자인 특면에서 활용도가 낮은 문자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김종건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 원천은 캘리그래피와 디자인의 결합, 생각과 발상의 전환, 그리고 온고지신의 실천에 있는 것 같다.
필묵의 향기가, 그저 먹향만이 아닌 사람냄새를 지니게 된다면, 그것은 손글씨를 그리고 한글을 일상 속에 깊이 가져가려는 김종건과 필묵의 노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게 된다면 한글은 어느새 글자의 차원을 넘어, 의미 전달과 시각적 이미지의 결합체로서 새롭게 발전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