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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포그래피에 한국인의 정서를 담다 -아티스트 이진경 조회수 16304

작가 이진경은 캔버스에 글씨를 쓴다. 국밥이라고 쓴다. 바다라고 쓴다. 찔레꽃이라고, 엄마찾아 삼만리라고 쓴다. 다만 정직하게 써 내려가듯 그린 단어일 뿐인데 뜻 모를 감동이 밀려온다. 사전적 의미만으로는 깨달을 수 없는, 그 정서를 공감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국밥 한 그릇에 담긴 뜨거운 목숨, 검푸른 바다에 녹아있는 푸르고 짠 눈물, 찔레꽃에 겹쳐지는 엄마 얼굴, 엄마찾아 삼만리를 관통하는 근원적 그리움… 이진경의 한글 타이포그래피는 그렇게 우리네의 마음을 나지막이 울린다.

에디터 이상현 | 사진 스튜디오 salt


이진경은 쌈지길의 아트디렉터로 재직하며 브랜드 관련 여러 타이포그래피 작업을 도맡아왔다. 특히 인사동 쌈지길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른바 ‘이진경 체’는 삭막한 콘크리트 건물에 알록달록한 색깔을 칠하며 공간에 온기와 생기를 부여한다. 그녀의 손 글씨는 세련된 조형미는 다소 떨어지지만 생명력이 펄펄 살아 있고, 정제된 글꼴이 아니기에 더없이 편안하고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최근 널리 보여지는 일련의 캘리그래피 작업과는 차이를 보인다. 차라리 재래시장의 상인들이 직접 손으로 쓴 간판 글씨를 연상시킨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 스스로도 그 생생한 매력에 흠뻑 빠져 ‘꿀 팝니다’, ‘찐 찐빵’ 등 필사 작품을 선보였다는 것. 뿐만 아니라 ‘직행 완행’, ‘빙어’ 등 생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람들의 손 글씨를 따라 그렸다. 과연 작가 이진경은 왜 예쁘지도 않은 손 글씨에 이렇듯 매료되었을까.

“무협소설을 읽어보면 강호의 고수들은 칼 들고 폼 잡는 게 아니라 정작 밭을 매고 있다. 재래 시장의 상인들이 쓴 손 글씨가 마치 그렇게 생각된다. 이미 일상이 되거나 더없이 편안한 형태가 된 글씨이기에 엄청난 내공이 느껴진다. 현란한 장식이나 복잡한 꾸밈이 필요 없는, 그 자체로 이미 완전한 모습이랄까.”


시인 이종욱은 흥미롭게도 이진경의 타이포그래피에서 간판글씨와 궁체의 혼재를 감지하기도 한다. “이진경의 타이포그래피는 이런저런 삼십년 전으로의 장식적인 간판글씨들과 삼백년 전쯤일 듯싶은 단정한 궁체의 흔적을 근거로 하여 키치와 순미술이 전술적인 기지(基地)에 의해 버무려진 듯, 그러나 천진하게 보인다. 그렇기만 할까? 후줄근한 간판체가 실은, 별 것 아닌 하층문화의 것만이 아니었으며, 궁체 또한, 별 것인 구중, 혹은 규중의 여필(女筆)만도 아님을 발언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발언은 미술이, 또는 예술이, 별것도, 별 것 아님도 아닌, 별다름 없는 별 것, 곧 일상의 것임을 투사한다.”


흔히 필체에는 글쓴이의 흔적이 드러난다고 한다. 종이 위에 써 내려간 글씨는 이미 육화되어 필자를 지시한다. 그리고 이진경의 글씨는 건강한 기백이 가득하지만 어딘가 쓸쓸하기도 하다. 그래서였을까. 덕성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유학 길에 올랐다가 문득 ‘내 것’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되돌아와, 작업실을 꾸리고 12년 간 작업에 몰두했던 이진경. 그러나 서른 여섯 그녀 앞에 엄청난 불행이 찾아왔다고 한다. 갑작스런 화재 때문에 작업실과 작품을 하루 아침에 모두 잃게 된 것.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고 누군가 말했던가. 천성이 낙천적인 그녀는 엉덩이를 훌훌 털고 일어나, 강원도 홍천 두메산골에 터를 잡아 집을 짓고 수도자처럼 다시 그림에 매달렸다. 어쩔 수 없이 지게 된 빚을, 그림을 팔아가며 갚아왔다. 그리고 그녀의 대표작이 이 시기에 쏟아진다. “그림으로 쓰는 일기라고 할까.”


‘밥’, ‘어제’와 ‘오늘’, ‘첩첩산중’, ‘나물먹고 물마시고’, ‘꿈같고 꽃같은’, ‘머무름 없이’,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비슷한 것은 가짜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아마도 작가 이진경은 먹고 사는 일의 숭고함, 하루살이의 번민과 깨달음을 그렇게 작품에 투영한 듯싶다. 바로 그 단순하고 명쾌해진 삶의 진실이, 단순하고 명쾌한 획과 선과 색으로 표현된 것이리라. 형태로서의 타이포그래피와 언어로서의 메시지, 그리고 소통으로서의 커뮤니케이션이 한 지점에서 발화한다. 그래서 이진경의 글씨를 보는 것만으로 뜻 모를 정서적 울림을 느끼게 된다. “그리기는 보기와 같다. 보기의 관람자가 그리기의 작자를 이어준다. 나는 통하고 싶다. 그리기의 목적은 나는 살아있고, 내가 살아가며 나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 내가 즐거워지는 것. 그것, 생은 그리기다.”


‘아름답다’의 어원은 ‘앓음답다’라는 속설이 있다. 이를테면 사랑의 아름다움은, 사랑 때문에 앓고 앓아본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진경의 타이포그래피가 아름다운 이유도 마찬가지다. 결국 한글 디자인의 아름다움이란, 결코 조형미만으로 완성되지는 않음을 시사한다. 과연 기와의 곡선과 선비의 상투 모양을 한글 디자인에 반영한다고 한국적 한글 디자인일지 의문이 드는 이유가 그래서이다. 그 안에 한국인의 희로애락이 서려있을 때, 한글 디자인은 비로소 완성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