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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인 문자생활을 위한 타이포그래피 -그래픽디자이너 부창조 조회수 16987

천 가지 표정의 디자인 안에서 글자는 만 가지 모습을 띤다. 하나의 그림 안에서 디자이너는 얼마나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이 선택은 서체 앞에서 더욱 넓어지고 골치 아파질 수 밖에 없는데, 서체의 얼굴이 전체 디자인의 얼굴을 좌우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개발된 수천 개의 서체들, 그것으로도 모자라 디자이너들은 늘 새로운 서체를 갈망한다.
그래픽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부창조는 서체 자체의 표정도 중요하지만 함께 쓰이는 다른 요소들과 얼마나 조화를 이루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그림에 꼭 맞는, 화룡점정 같은 퍼즐조각이 될 서체를 찾아 부창조만의 작품을 만들어 온 그의 창조적인 문자생활을 들여다 봤다.

에디터 | 정윤희(yhjung@jungle.co.kr)
사진 | 스튜디오 salt

단국대 시각디자인과 재학시절부터 거리낌없이 활발한 활동을 펼쳐 보였던 부창조는 학교를 졸업하고 스트라이크 디자인(Strike design)을 거쳐 스티키 몬스터 랩(Sticky monster lab)으로 이어지는 동안 자신만의 색깔을 공고히 다져왔다. ‘심플’ 한 단어로 요약되는 그의 작업들은 ‘khai’, ‘na’, ‘대한교과서’, ‘singles’, ‘M25’, 나이키 컬쳐 무비로 제작된 ‘Past : The Runners’, 아트토이 윕(Ouip), 휴대전화 기본 스킨, 각종 포스터 등 다양한 영역에서 대중과 만났다.
그의 작품에서 읽을 수 있는 글자들은, 여타의 그래픽디자인이 그렇듯 문자 주변의 소스와 이미지, 색상 등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하지만 다른 그래픽디자인과 다른 건 그의 작업에 사용되는 문자들이 부창조만의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 자신이 사용할 때마다 새로운 서체를 만들어 내거나 타이포그래피 자체에 몰두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자’에 대한 꾸준한 관심은 좀더 조화로운 디자인, 보다 잘 짜인 디자인을 가능하게 했다.
글자에 대한 그의 관심은 대학 재학시절 한글디자인동아리 집현전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시각디자인전공자로서 당연한 관심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집현전에서의 활동이 대학생 한글디자인동아리연합 ‘한울’로 조금 더 커지고, 그 안에서 한글디자인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타이포그래피라든가 한글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그의 작업들이 ‘부창조만의 디자인’에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얼핏 보면 부창조의 작업에서 깜짝 놀랄 만큼 새롭게 보이는 한글디자인은 없다. 그의 작품 속에서 만날 수 있는 한글디자인은 그저 단정할 뿐이다. 하지만 이 단정함은 단순히 지면이라는 2차원이 아닌 3차원의 공간에서 볼 수 있는 여백을 활용한 느낌인데, 공간 안에 배치된 다른 요소들과 직소퍼즐처럼 정교하게 짜여 있다. 문자가 전체적인 컨셉트나 다른 이미지와 충돌하지 않고 꼭 맞게 어울리는 것이다. 부창조가 문자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문자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면 문자와 오브제가 충돌하는 일을 미리 막을 수 있다.
사실 그래픽디자인은 ‘문자’를 제외하고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장 이상적인 것은 ‘나만의 서체’를 갖는 것이다. 지면 안에서 함께 배치되는 요소들과 잘 어울리는 글꼴이라면 작품을 한층 빛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멜론에 연재했던 카툰 ‘미스터 간지’의 타이틀 로고처럼, 디자인을 구성하는 다양한 소스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서체를 갖고 싶은 것이다. 그래픽디자인의 기본이 되는 문자가 탄탄하지 않으면 그래픽디자인은 결국 사상누각이 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글을 디자인에 활용하는 디자이너는 그리 많지 않다. 시도하는 디자이너는 많을지언정 결과물로써 인정받는 디자이너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젊은 디자이너들의 공통된 이야기는 ‘한글은 어렵다’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문자를 디자인의 재료로써 연구하고 개발해 온 역사가 길지만 우리나라는 이제 시작이다. 따라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캘리그래피가 유행한 최근 몇 년, 한글디자인이 주목 받고 있지만 거품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기본적인 이해 없이, 본질적인 연구 없이 치장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한글디자인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산학협력프로젝트나 서체 공모전 등, 물밑 작업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정말 중요한 건 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문자는 문자일 뿐 언어가 아니잖아요. 우리가 한글의 구조나 문법을 모두 알고 말하는 게 아니듯이 외국 사람들도 그렇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말은 못해도 얼마든지 디자인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럽게 콘텐츠가 중요해지는 거죠.” 부창조의 디자인은 지금 다른 모든 디자이너들이 그렇듯 현재진행형이다. 과거를 이야기하기 보다 미래를 살피고 싶은 그는 자신만의 문자를 찾아,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 걷고 또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