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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디자인은 '작고 소박하더라도 정확한 해답을 주는 것'이다 조회수 16131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디자인의 진정성이 무엇인지,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왔다. 한국에서의 학부시절 미래 주거 디자인에 매료되어 상상 속에서나 꿈꿀법한 가구들이나 제품 공간 등을 그리며 ‘상상을 현실로 바꾸기’ 위한 당찬(?) 실험들을 즐겼었고, 이탈리아 유학시절 그곳의 디자이너들과의 많은 충돌을 통해서 이제까지의 나의 생각들이 적잖은 무모함과 비현실적이며 다분히 주관적인 입장이었다는 진리도 깨달았다. 나의 디자인에 대한 인식과 깨달음은 때로는 일보 전진 때로는 후퇴를 반복하면서 수없이 그 깊이와 창조성의 의미에 대해 나만의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일하게 된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추구하던 알키미아(ALCHIMIA) 사조의 ‘인간 사고와 발상에 대한 자유로움’에 또 매료되어 기능을 빌미로 자유로움을 죽여 왔던 바우하우스(Bauhaus)의 ‘무조건적 기능주의’에 회의를 느낀 때도 있었다. 그 시절은 디자인에 대한 사고가 어떻게 멀리까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 시절에도 나는 굿 디자인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명확한 해답을 얻지는 못했던 것 같다.
단지 알키미아나 멤피스 등의 이탈리아 디자인을 주도하던 흐름은 디자인사의 변화에 대한 하나의 계기이자 의미로써 충분했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때문에 수없이 많은 유럽의 디자인이 이탈리아 밀라노를 중심으로 부흥기를 맞이 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모든 것들은 완벽하고 멋지고 완성도가 있어 보였으며, 사람들은 그러한 이탈리아의 명품 디자인에 매료되어 열광했으니까 나는 그 모든 것이 굿 디자인의 화려한 사례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내가 “굿 디자인이 바로 이런 것” 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은 또 다시 한국에 귀국하여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부터 적잖은 혼란과 변화를 겪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이곳의 환경과 사회적인 현상은 또 유럽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고 디자인에 대한 인식과 클라이언트의 입장도 무척 달랐기 때문이다. 한국은 한국대로의 지역성을 띈 디자인이 또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몰랐던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 한국에서는 한국만의 정체성을 가진 디자인이 꼭 필요한 것일까?

지금 한국은 디자인이 넘쳐나는 나라가 되었다. 너무나도 많은 디자인 교육과 디자이너, 그리고 전시와 그에 따른 무지막지한 행정들을 쏟아내고 있다. 학부의 교육을 통해 혹은 수 많은 전시 경험을 통해 나는 사람들이 단순히 “멋지고 새롭고 신기한 것이 디자인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에 많이 놀라고 당혹스러웠다. 디자인을 위해서는 무언가를 항상 새롭게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부적절한 사례들을 봇물처럼 쏟아내고 있다.

이쯤에서 내가 굿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례를 하나 들어야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스웨덴 출신의 디자이너인 피터 카르프(Peter Karpf)의 ‘eco’를 말하고 싶다. 단순하고 아름다운 합판(plywood)을 이용해 너무나도 정확한 의자에 대한 해답을 전달해 주고 있기 때문. 재생이 가능한 혁신적인 소재이기 때문에 환경과 인류에 무해하고 경제적인 소재 및 단순한 공법을 통해 대중화에 힘썼다. 제조와 생산이 단순한 밴트 우드 기법이라 적은 에너지로도 생산이 가능하며 나무가 휘는 소재의 특성을 디자인에 적극 반영하여 원자재의 낭비를 줄이고 의자를 열 개 이상 쌓아 놓아도 웬만한 의자 한 개 정도의 두께도 안될 만큼 완벽한 기능성을 자랑한다. 게다가 2000년 에코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나는 작고 소박하더라도 정확한 해답을 주는 것에 열광한다. 지금까지 그 모든 디자인 흐름과 경험 및 학습을 통해 얻은 결론은 “우리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정갈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란 진리다. 소위 디자인이란 명명하에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수한 행사와 창조 행위들이 이 소박한 의자 하나가 말하고 있는 만큼의 정확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돌이켜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도무스아카데미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김치호는 2003년 5월 치호앤파트너스를 설립하였다. 2003년 코리아디자인어워드 공간디자인부문상을 수상하였고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아트디렉터를 역임했다. 인테리어디자이너이자 미술감독인 그는 현재 연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겸임교수로도 재직중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