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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안의 그래픽을 직조하다, 윤세연 조회수 14674

한국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면서도 자신의 분야가 미술 쪽임을 믿고 있었다는 윤세연은 아트 센터 컬리지 오브 디자인(Art Center College of Design)을 졸업하고 브랜딩 작업을 하다가 현재 제이 폴 게티 미술관 (The J. Paul Getty Museum)의 전시디자이너로 재직 중이다.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공부를 시켰던 아트 센터 덕을 봤다고 이야기하는 그녀는 많은 길을 돌고 돌아 지금의 일을 하고 있지만, 자신의 취약점을 최소화하고, 능력을 열정적으로, 과감하게 드러내는 것이 현지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 전했다.

에디터 | 김유진(egkim@jungle.co.kr)

 

미술관의 전시 디자이너(Exhibition Designer)는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가
전시의 기획의도에 맞추어 각종 그래픽물과 작업들을 시각화하는 과정이다. 공간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필요하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일반 그래픽 디자인과 비슷하다.

처음 이 분야에 어떻게 뛰어들게 되었나
원래 프리랜스 디자이너로 브랜딩(Branding) 작업을 주로 해왔다. 하나의 브랜드나 기업이미지를 시각화해서 바꾸어주는 작업이니, 전시를 하나의 브랜드로 본다면 전시디자인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래서 미술관을 종종 찾으면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중, 학교 취업 정보 웹사이트에서 제이 폴 게티 미술관의 디자이너 채용 공고가 올라온 것을 발견하고 지원하게 되었다.

채용 과정은 어땠나
채용 공고를 본 것이 이미 글이 올라오고 한두 달이 지난 뒤여서 사실 망설였었다. 고민하다가 뒤늦은 이메일과 함께 이력서 그리고 미니 포트폴리오를 보냈다. 몇 작품만 보여주고, 내 작업이 궁금하도록 만들려고 했었는데, 연락이 오더라. 말주변이 없어서 전화 인터뷰가 나의 최대 취약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급적 전화로는 실수하지 않도록 짧게 끝내고, 직접 만날 수 있는 인터뷰 날짜를 잡도록 유도했다.

인터뷰는 어땠나
인터뷰 전날까지 포트폴리오 작품 하나하나를 조리있게 설명할 수 있도록 연습을 많이 했다. 다른 곳에서도 이 방법이 꽤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매니저가 질문지 리스트를 몇 장에 걸쳐 작성해왔더라. 그 질문에 따라 그에 맞는 작품을 보여주고 답해야 해서 매우 당황했었다.

선배 입장에서 본다면 지원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물론 포트폴리오다. 스스로 자신의 포트폴리오가 100% 만족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알아차린다. 그리고 자신만의 특화된 장점이 있어야 한다. 나에게는 그 무기가 타이포그래피였다. 그리고 이력서를 보내고 기다리는 게 아니라, 계속 노력해서 연결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잊었다 싶을 때쯤 안부 겸 전화를 해서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는 것도 필요하다.

입사 후 적응은 어땠는지
미술관이 무려 100만평에 달해 회사 안에서 길을 익히는 데만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미술관 분위기도 적응하기 어려웠다. 그 전에 일했던 회사는 모두 캐주얼한 분위기였다. 청바지에 티셔츠 입고 출근하고, 음악도 들으면서 일하고. 그런데 미술관은 옷차림 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단어 선택도 신경 써야 해서 새로운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또 한 전시회에 두 명이 팀이 되어 디자인을 하는데, 파트너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손발이 맞기 때문에 그런 작업 방식도 적응해야 할 사안 중 하나였다.

미술관에서의 생활은 어떠한가
가장 좋은 것은 금요일날 격주로 쉰다는 점이다. 전시는 협업의 측면이 있기 때문에 디자인 보고 미팅, 설치 미팅 등 큰 미팅 외에도 전시 담당 큐레이터와 소규모 미팅들을 끊임없이 진행한다. 미팅이 없는 시간에는 본연의 업무를 한다. 하나의 전시를 위해서 많은 단계의 디자인 과정이 있는데, 이를 스케쥴에 맞춰 진행한다. 벌써 2010년까지 전시 스케쥴이 나와 있다. 큰 전시회를 위해 9~12개월 전부터, 작은 전시회는 6개월 전부터 디자인이 시작된다. 설치를 마쳐야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그 중 최근에 끝낸 <어 라이트 터치>(A Light Touch: Exploring Humor in Drawing)라는 전시가 기억에 남는다. 재치와 풍자, 유머가 담겨있는 15~16세기 드로잉을 소개하는 전시였다. 전시 그래픽도 재미있게 하고 싶어, 모든 배너, 갤러리에 들어가는 섹션 타이틀, 그래픽의 타이포그래피를 모두 손으로 그렸다. 대체적으로 신선한 반응이 있었던 반면 홍보부에서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기존 폰트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아이디어가 아까워 기존 폰트를 부분 부분 수정해서 딱딱하지 않고 유동성있게 디자인하고 다시 스캔해서 작업했다. 멀리서는 모르다가 가까이서 보고는 재미있어하는 사람들을 보며 뿌듯했다.

어려운 점, 힘든 점은 무엇인가
어렸을 때 해외에서 자라서 영어가 모국어 같지는 않아도 언어 장벽은 크게 느끼지 못한 편인데, 미술관에서 사용하는 단어는 모르는 단어들이 특히 많았다. 이메일 하나를 보내도 단어 선택을 꼼꼼하게 신경 써야 한다는 점이 어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화와 가치관 차이.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미국에서는 겸손이 미덕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감 없는 사람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 점을 바꾸기 힘들더라.

어떤 꿈을 가지고 있나
미술에서의 열정만큼은 자신 있다. 나이가 들면 작품 활동을 직접 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래픽디자인 전공자로서 이 분야에 관한 개인전을 하고 싶다. 내 개인전을 내가 직접 디자인하는 날이 오길 손꼽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