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수 등록 마감까지 남은 시간은?

DAY

:
:
수강 신청하기
로그인

|

내 강의실

|

마이페이지

그린채널

공지사항 게시글 보기 : 번호, 제목, 조회수, 작성일 등 정보제공
솔직수다 공감툰 팬티패션 이크종 조회수 15439

이런, 이크종이잖아! 약속한 카페에서 사진기자와 함께 앉아있는 그를 발견하곤 내 맘은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꼭 사진기자 앞에 놓인 커다란 카메라나 작가 앞에 놓인 A4용지 뭉치를 봐서 그런 건 아니다. 아아, 영락없는 이크종이군. 캐릭터 탄생의 비화 같은 건 포기해야겠어,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달까. 묻지도 않은 수수께끼가 스르륵 풀렸다.

글 | 안태호 <컬처뉴스> 편집장, 사진 | 스튜디오 salt

 

 

이크종이라는 독특한 이름에 얽힌 비밀도 듣고 보니 싱겁기 짝이 없다. 작가의 본명은 임익종. 익종을 ‘ickjong’이라고 영어로 표기한 걸 보고 친구들이 놀린 게 계기가 됐다. ‘ikjong’나 ‘igjong’이 아닌 이크종이 뭐냐는 거였다. 작가는 ‘pick’도 픽이고, ‘kick’도 그냥 킥 아니냐며 항변해봤지만, 캐릭터 이름은 이크종으로 굳어져 버렸다. 나름 믿었던 ‘팬티 패션’도 카투사 시절 습관처럼 팬티만 입고 지내던 기억에서 비롯된 거라 특별할 게 없단다.
그러나 실망 마시라. 캐릭터 탄생의 비밀이 밋밋하다고 해서 그의 작품이 주는 즐거움이 상쇄되는 것은 아니다. 삐죽삐죽한 머리에 시큰둥한 표정, 하얀 팬티 한 장만 겨우 걸친 이크종은 출생의 비밀 없이도 충분히 유쾌한 경험을 보장한다.

 

건축일을 정리하고 ‘강호’에 본격적으로 나선 지 이제 겨우 3년, 그는 이크종이라는 캐릭터 덕에 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솔직하고 가감 없는 캐릭터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루나파크가 얄미울 정도로 20대 직장인 여성의 감수성을 콕콕 짚어냈다면 이크종은 좀 더 노골적이고 솔직한 캐릭터로 어필했다.

그의 일기와 작품들이 주는 재미는 살짝 거친 듯 하면서도 유머를 머금은 익숙한 작화와 일상의 소소함을 솔직하고 발랄하게 표현하는 데서 온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는 섬세한 감정을 흡혈귀 이야기로 다룬 아름다운 영화 <렛미인>을 보면서는 주인공 오스칼이 속옷만 입은 모습을 보고, 역시 ‘하얀 팬티 차림은 국제표준’이라고 반긴다.
<100분 토론>의 ‘막장패널’ 관리에 고심하는 손석희를 위해서는 ‘구준표 이대로 좋은가’, ‘왕비호의 독설, 득인가 실인가’ 등의 가상토론을 상상해본다. 물론, 작가의 상상에서 구준표는 ‘석희, 너도 나를 좋아하니?’라는 멘트로 손석희를 쩍 얼어붙게 만들고, 왕비호는 ‘아저씨 누구?’라며 숫제 손석희를 듣보잡 취급한다.
<베토벤 바이러스>가 한창일 때는 ‘이든’이에 대한 팬심을 고백하며 우연히 술집에서 만나 사인을 받은 일을 대놓고 자랑하기도 했다. 뒤집기의 쾌감이 있는가하면, 소소한 수다스러움이 있다. 독자들은 친구와 이야기하듯 부러움을 표시하기도 하고 공감을 보이기도 하면서 이크종의 놀이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외모에서도, 이름에서도 드러나지만 이크종은 작가의 분신이나 마찬가지다. 일기를 보면 작가의 몇 가지 특징이 보인다. 경쟁을 싫어한다. 귀찮은 게 많다기 보다는 귀찮은 게 자주 이긴다. 술을 좋아한다. 미드에 열광한다. 택배에 기뻐한다. 장이 약하다. 다이어트, 운동에 대한 열망은 있으나 항상 좌절한다. 앞뒤 양옆을 재보고 둘러보고 뒤집어 봐도 소심하고 평범한 우리네 일상과 다를 게 없다. 작가가 스스로 밝히는 캐릭터의 강점 역시 ‘찌질해 보여도 된다는 거’다.
캐릭터 덕분에 많이 알려졌지만, 반대로 캐릭터 때문에 오해도 많이 받았다. 어떤 이는 메일을 보내와 ‘나이도 있으신 분이 왜 이러십니까’라고 항의하는가 하면, ‘똥 얘기 좀 그만해라’며 윽박지르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그는 팬티만 입고 있는 것이 반사회적이라 생각지도 않고 ‘똥 싸는’ 얘기가 피할 것도 아니란 생각으로 지금껏 왔다.

좋아하는 만화가를 물었을 때, 그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는 마츠모토 타이요와 후루야 미노루, 다케이코 이노우에 등의 열광적인 팬이다. 마츠모토 타이요는 그의 삶의 모델이라 할 만큼 좋아하는 작가. <핑퐁>부터 시작해, <하나오>, <제로>, <철콘 근크리트>, <고고몬스터>까지 마츠모토 타이요의 작품들이 줄줄이 풀려나왔다.
이크종이 처음 돈을 받고 만화를 그린 것이 2006년 6월이니 생업으로 만화를 시작한 게 채 3년이 못됐다. 매거진t에서 고정꼭지로 ‘이크종의 티팬티’를 첫 등장시킨 이후로 무비위크, 한겨레 Esc, 인터파크 공연리뷰 카툰 등 많은 매체에 만화를 실었다.
그에게 유명세를 안겨준 건 팔 할이 매거진t(현재 10asia)지만, 가장 인상에 남는 건 한 여행사에서 연재했던 여행 카툰이다. 그 덕에 난생 처음 비행기에 몸을 싣고 방콕으로, 도쿄로 홍콩으로 날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자그마치 런던 여행을 앞두고 회사가 돌연 망해버렸다. 차일피일 일정을 미루던 귀차니즘을 탓해봤지만, 이미 늦은 후회였다.

이크종의 꿈은 스누피가 나오는 <피너츠>의 찰스 슐츠처럼 오래오래 기억되는 작가로 남는 거다. 마츠모토 타이요와 같은 장편 스토리물을 해보고픈 욕심도 있다. 얼마 안 있으면 예담에서 그의 첫 번째 책이 엮여 나온다. 원래 직장을 그만둔 2006년 말 20대 백수의 방황하는 모습을 담으려 했던 책은 최초의 컨셉트가 많이 수정된 상태로 나오게 됐다. 무엇보다, 그는 이제 20대가 아닌 거다!
작업이 잘 안 풀릴 때면 술과 좋은 친구들을 만나 긴장을 푼다. 취향마저 닮아버린 10년지기 친구들을 만나다 보니 술자리는 종종 무궁무진한 소재발굴의 장이 되기도 한다. 이크종이 오래오래 작품을 하며 심드렁한 척 수다를 떨어주면 독자들도 점점 이크종과 닮아갈 것만 같다. 물론, 독자들이 모두 ‘팬티 패션’만 고집한다면 곤란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