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수 등록 마감까지 남은 시간은?

DAY

:
:
수강 신청하기
로그인

|

내 강의실

|

마이페이지

그린채널

공지사항 게시글 보기 : 번호, 제목, 조회수, 작성일 등 정보제공
어느 '센스쟁이'의 진검승부, 호조 조회수 14840
호조의 만화는 한 컷으로 승부를 건다. 그는 급소를 찌르듯, 네티즌들의 예상치 못했던 허를 찌른다. 찰나와도 같은 그 짧은 순간, 승패는 이미 결정난다. 시쳇말로 ‘빵빵 터진다.’ 네티즌들은 항복이다. 호조, 센스 있어, 인정 인정!

에디터 | 이상현(shlee@jungle.co.kr)


강호의 고수들로 넘쳐나는 웹 카툰계에서, 비범한 내공을 키워온 숨은 실력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호조(Hozo). 학창시절부터 만화를 곧잘 그렸던 젊은 청년은 2002년, 개인 홈페이지 호조넷(www.hozo.net)을 통해 취미 삼아 카툰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풀빵닷컴, 디씨인사이드 등을 중심으로 당시 인터넷에는 엽기, 언어유희, 허무개그, 패러디 문화가 대세를 이뤘고, 호조 역시 이 흐름을 타며 뭇 네티즌들의 관심 대상으로 떠올랐다. 어느 네티즌이 호조의 패러디 만화를 디씨인사이드 게시판에 올렸는데, 이를 본 유저들이 <식스센스> 이후 최고의 반전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그의 팬을 자처했던 것.


사람들의 예상치 못했던 허를 찌르고, 이내 실실 웃게 만드는 이른바 ‘허허실실 만화’는 기성 미디어에서도 욕심을 낼 만큼 특별한 매력이 있었다. 조인스닷컴에서 6개월 동안 인기 웹 카투니스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연재 만화를 발표했다. 구구절절한 이야기 없이 그림만으로 웃다 넘어가게 만드는 기막힌 표현력이 발군이었다. 그리고 차라리 말장난에 가까운 유치한 이야기(그랜다이저는 그앤다잊어, 소개팅은 소와 개의 미팅, 화이트데이는 Fight Day라는 식)지만, 웃음의 급소는 내용보다는 표정이나 포즈와 같은 디테일에 있다는 사실을 일찍이 눈치챈 타고난 ‘센스쟁이’였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만화에 큰 비전을 갖지 못했던 그는 군 제대 후 엉뚱하게도 영화배우를 꿈꾸게 된다. 영화배우 지망생이었던 군 동기를 따라서 모 대학의 연극영화과에 응시까지 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낙방, 결국 마음을 접고 그가 발길을 돌린 곳은 다름 아닌 게임 회사였다.

게임 회사를 다니면서도 권순호는 홈페이지를 통해 지속적으로 카툰을 공개했다. 사실 그는 회사 일을 통해서 제 실력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몇 백 명의 그래픽디자이너가 경쟁하는 회사에서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센스쟁이’인데, 그걸 회사가 못 알아보더라.” 낮에는 권순호라는 이름으로 클라이언트 업무를 하고, 밤에는 호조라는 이름으로 카툰을 업데이트하길 4년, 그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기에 이른다. 호조의 유머와 센스를 인정해주는 이들에게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선 것이다. 퇴사를 결정할 때까지만 해도 본격적으로 작업에 몰두하면, 여느 인기 카투니스트들마냥 승승장구할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작업하는 시간은 똑같고 잠자고 노는 시간만 늘었네요.”


호조는 앞서 등장한 웹 카투니스트들과는 달리 뚜렷한 캐릭터가 없다. 그의 만화가 하나의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인데, 단일 캐릭터의 부재는 곧 ‘시장성의 부재’였다. 흔히 말하는 ‘브랜드 파워’가 떨어졌다. 게다가 작업의 완성도를 우려해 그간 연재 만화를 일부러 사양해왔던 점도, 결과적으론 경력에 비교해 낮은 인지도를 야기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단박에 알아볼 수 있는 ‘호조만의 스타일’과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센스’만큼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삐죽삐죽 토끼 귀, 가늘게 뜬 눈, 힘 ‘팍’ 준 콧구멍, 의뭉스러운 표정만으로 네티즌들은 무릎을 치며 그의 정체를 파악한다. 바로 이점이 반짝 스타로 급부상했다가도 어느새 시들시들해지는 많은 인기 웹 카투니스트들의 행보와는 달리, 호조는 2002년부터 현재까지 그의 말대로 ‘질리지 않는 만화’를 꾸준히 그리며 롱런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권순호는 “이제 순수하게 돈을 벌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마니아들의 특별한 사랑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만화를 그리고 싶은 그는 일단 올해의 출발이 좋다. 작년 친구들과의 여행 스토리를 담은 책 <어째됐든 산티아고만 가자>가 호응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무려 ‘팬 미팅’까지 했고, 곧 팬들과의 지리산 등반 여행까지 계획하고 있다. 그렇다고 돈벌이에 혈안이 됐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는 오늘처럼 내일도 사람들의 웃음 소리를 들으며 만화를 그리는 카투니스트로 살 것이다. “그저 사람들이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편하게 웃을 수 있는 만화, 민망하고 껄끄러운 부분도 솔직하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만화”를 그리는 만화가로,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센스쟁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