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수 등록 마감까지 남은 시간은?

DAY

:
:
수강 신청하기
로그인

|

내 강의실

|

마이페이지

그린채널

공지사항 게시글 보기 : 번호, 제목, 조회수, 작성일 등 정보제공
가까이 더 가까이 조회수 13713

디자인의 근원은 소통이다. 그것도 꽤나 어려운 소통. 사실, 이 세상 그 무엇이 살아 숨쉬는 한 소통하지 않을까 만은, 디자인처럼 에둘러 소통해야 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에 앞서 ‘전달하는 바’를 위해 헌신해야 하는 비운의 운명이 또 있을까?

글 | 박창용(모임 별, 그래픽디자이너),
에디터 | 이상현(shlee@jungle.co.kr)

 

그렇다. 디자이너도 때로는 온전히 내 얘기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리저리 휘둘리며 복잡하고 다채로운 주제를 해석하느라 두통에 시달리는 대신, 야심과 공상과 꿈을 있는 힘껏 내뱉고 싶을 때도 있으니까. 디자인의 몸을 빌려 나를 소통하고 싶은 욕구는 공평하게 허락된 것 아닌가? 물론 예전에 비한다면 요즘은 사정이 좋은 편이다. 외롭고 어두운 방 구석에서 햄 라디오를 통해 미지와 소통하던 과거와 달리 우리에겐 너무나 간편한 창, 웹이 있으니까. 현대를 살아가는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웹사이트, 블로그… 이곳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 못 다 한 디자인을 원 없이 풀 수도 있다. 아니,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웹사이트가 미니홈피를 포함해 지나칠 정도로 많아졌다는 것.

사진작가 닉 나이트가 웹사이트, ‘쇼스튜디오’를 통해 잡지와 광고에서 상상할 수 없던 비전을 선보인 이후 벌써 몇 년이 흘렀고, 근래 웹사이트는 치킨집 사장님에게도 필수 아이템이 되었으니 소통으로서의 매력도 급감했다. 차라리 위에서 언급한 햄 라디오로 두터운 마니아 층을 확보하는 것이 더 현명할 수도 있을 터, 이로써 디자이너들은 쌓여가는 프로젝트와 더불어 고민거리도 덩달아 끌어안게 되었다. 블로그나 웹사이트를 ‘디자이너답게, 디자이너로써, 디자인으로’ 치장하고 가꿔나가야 하게 되었으니. 홍보 효과에 큰 기대는 할 수 없지만 동대문 운동장을 갈아엎은 자리에 자하 하디드의 건물이 들어선다는 걸 국민 대다수는 여전히 모른다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그나마 내가 무슨 일을 누구와 했으며 내가 누구인지, 명함 정도는 판 단계라고 볼 만하다.


이후는 각개전투. 여유자금이 있다면 물건을 만들어 팔거나 선물할 수도 있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는 예는, 서랍 가득 들어찬 라이터들과 포스트잇이고, 조금 멀리 나아간다면 런던에서 발행되고 있는 잡지, <모노클>의 지적이고 세련된 상품들이 있다. 잡지에서 언급된 삶의 취향, 최고급인 동시에 지적인 제안들을 현실화한 놀라운 능력에 감탄할 것이다. 이 가공할 상품 목록은 포터로부터 시작돼 꼼므 데 가르송, 벨렉스트라, 스켑슐트와의 협업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최근엔 런던과 LA에 조그만 숍을 냈고, 급기야 알랭 드 보통과 책(<일의 기쁨과 슬픔에 관하여>, 1000권 한정판)을 출간하기도 했다. 특별호랍시고 싸구려 재고품을 끼워 넣는 상술과 혼동하면 큰 오산이다. 이건 고도의 전략이고, 너무나 잘 먹히고 있어서 암스테르담의 <판타스틱 맨>은 쿠튀리에(Couturier) 급 향수 브랜드인 바이레도와 함께 자신들의 제호를 딴 향수를 시판하기 시작했다. 소통의 최전선인 잡지마저 이렇듯 고군분투하고 있는 상황에서 때때로 아름다움을, 상술을, 스타일을 혹은 철학을 팔아야 하는 디자이너들은 숨이 턱까지 차오르게 마련이다.

이제 고인이 된 나기 노다는 상상력과 기발한 스타일로 롯폰기에 사무실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털어 ‘호러 카페’를 열었고, 키티와 함께 ‘한판다’를 판매하기도 했다. 그녀는 순진무구한 눈망울로 '난 정말 그냥 좋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그 순간까지 아이처럼 순수하게 누가 돈 한 푼 쥐어주지 않는 기이한 샹들리에를 제작할 고민을 했다고 한다. MM은 그보다 더 나아갔다. 독보적인 스타일이 각광받기 시작하자 퐁피두에서 전시를 열기도 하면서 이젠 디자이너 대신 아티스트로 직함을 바꿔나가고 있다. 몇 해전 만난 그들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선로를 달리는 것'이라고 말했고, 결국 그들은 그 선로를 따라 또 다른 차원으로 떠났다.

그런가 하면 스웨덴의 ‘아크네 진스’, ‘아크네 페이퍼’는 결국 ‘아크네 패밀리’가 되었다. 아크네는 잡지, 패션, 디자인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총괄하는 ‘하우스’로 거듭난 것이다. 아크네 가족의 아버지뻘인 요니 요한슨은 디자인을 거대한 디렉션으로 정의한다. “디자인은 많은 것을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영역은 끝이 없죠. 삶이 허락하는 모든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결코 그래픽, 영상 등으로 구획될 수 없습니다. 철학을 읽히게끔 하는 것도 결국 디자이너의 몫이니까요.” 그의 말을 되새겨 본다면 디자이너들의 부업이나 외도는 오해일 수도 있다. MM은 다른 차원으로 간 것이 아니라 디자인의 영역을 넓혔거나 용감히 지웠을 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디자이너에게 하루하루는 데드라인과의 씨름이고 자기만족은 사치일 뿐이다. 디자이너나 디자인 스튜디오나 치열한 생존의 격전지인 오늘날을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해 구애하고 있고, 이것이 결코 볼썽사나울 리 없다. 지구를 탈탈 털면 디자이너 명찰을 달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나올지 상상만으로도 앞이 캄캄해지니까 ‘어필’해야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부업 아닌 부업을 시작하는 당신의 마음에 있다. 그것이 이런 저런 이윤과 할애할 수 있는 시간과 시장 여건 등을 고려해 튀어나온 정밀한, 때문에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결과라면 당신은 그것을 시작할 것인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그건 당신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까.

빅터앤롤프의 뿔테 안경을 지구 반대편의 조인성이 애지중지하는 것은 안경에 대한 그들의 남다른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블레스의 멤버이자 그래픽 디자이너인 마누엘 라에더가 고민 끝에 내놓는 한 해, 한 해의 다이어리가 그토록 멋진 것도 그의 학구적인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장르를 불문하고 부업 혹은 외도의 성패를 예상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우린 나기 노다처럼 그저 즐거워하거나, <모노클>의 타일러 브륄레처럼 멋진 것을 설파하는 데 보람을 느끼거나, 마누엘 라에더처럼 디자인을 더 고민해 볼 순 있다. 여기에 어제 있었던 클라이언트 측과의 지독한 통화 내용이나, 통장 잔고, 홍보 효과 따위가 끼어든다면 그건 명백한 실패다. 우리는 순수하게 우리 자신으로 소통하고 싶었던 것 아닌가?

디자이너와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개성과 재능을 십분 살려 다양성을 넓혀가는 것은 분명 두팔을 힘껏 벌려 환영할 일이다. 한 사람의 디자이너로서, 그리고 소비자로서 기꺼이 소통하고 싶다. 하지만 벗어나고자 했던 제약의 틀에 다시 갇혀버리는 순간 소통의 문도 굳게 닫힌다는 것을 잊지 말자. 사우나에서 친구의 등을 밀어주면서 나눈 가식 없는 대화처럼 솔직함이 결국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