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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0년대 영화 오프닝 시퀀스의 혁신, 그래픽 디자이너 솔 바스 솔 바스 조회수 14701


"멋들어진 걸 만들고 싶다. 비록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더라도.(I want to make beautiful things, even if nobody cares)" 솔 바스(Saul Bass)의 이 말에는 '나'라는 주체가 생략되어 있다. 그 누구도 상관하지 않더라도, 나에게만은 근사한 뭔가를 만들고 싶다는 선언일 것이다. 실제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말대로라면 솔 바스의 미적 기준은 좌우지간 '나'였던 셈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오늘날 그 기준은 정말로 하나의 '기준'이 되어 있다. 솔 바스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스타일을 대표하는 표징이 되었다는 데에 이견을 달 이들은 없을 것이다. 영화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의 선구자이자, 오스카 트로피까지 거머쥔 바 있는 진짜 할리우드 스타, 그래픽디자이너 솔 바스에 대해 알아보자.

기사제공 ㅣ 타이포그래피 서울 


솔 바스는 1920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1920년대의 뉴욕을 설명하는 키워드들을 떠올려보면 대략 이렇다. 경제 호황, 개인 소비 열풍, 포드(Ford) 자동차, 재즈, 피츠제럴드와 <위대한 개츠비>, 시가렛과 라디오를 즐기는 신세대 여성 플래퍼(Flapper)…. 뉴욕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뉴욕이지만, 1920년대만큼은 뉴욕의 타임라인에서 '클래식'으로 따로 구분 지을 만한 시기이다. 유년기와 청년기에 솔 바스가 뉴욕으로부터 받았을 영향이 어떤 색채였을지 조금은 짐작이 간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그는 뉴욕 맨해튼의 예술대학 '아트 스튜던트 리그(Art Students Leage)'에서 공부하다가 나중에 브룩클린 칼리지(Brooklyn College)에서 당대 유명한 화가 겸 디자이너였던 기요르기 케페스(Gyorgy Kepes)의 야간 수업을 들었다.

솔 바스는 20대 때부터 할리우드에서의 본격적인 커리어를 쌓아갔다. 지금의 확고부동한 명성을 안겨준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 작업에서는 30대 무렵인 1950년대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초기에는 톱스타 커크 더글라스가 주연한 복싱 영화 <챔피언>(1949)를 비롯하여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1951), <푸른 달>(1953) 등 대작들의 광고 인쇄물을 디자인했는데, 특히 <푸른 달>을 연출한 오토 프레밍거(Otto Preminger) 감독의 눈에 띄어 이후 몇 차례 함께 일하게 된다. 1954년에 오토 프레밍거가 제작과 연출을 겸한 뮤지컬 영화 <카르멘 존스>에서 솔 바스는 포스터를 디자인했는데, 결과물에 대해 오토 프레밍거가 상당히 만족스러워하며 내친김에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 작업까지 맡겼다고 한다. 이렇게 솔 바스는 자신의 기량과 크리에이티비티를 가장 잘 표현해낼 수 있는 영역으로 인도되었고, 서서히 날개를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솔 바스가 손댄 수많은 포스터 및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들 중에서도 <황금팔을 가진 사나이>(1955)는 마일스톤이라 할 만하다. 이 영화는 2류 재즈 뮤지션 프랭키 머신이 헤로인 중독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프랭크 시나트라가 주연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솔 바스는 헤로인을 향해 스멀스멀 뻗치는 '팔'을 핵심 이미지로 삼아 포스터와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를 디자인했다. 컷아웃 기법으로 만들어낸, 기하학적으로 비뚤어진 팔의 이미지가 강렬한 인상을 줄 뿐만 아니라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을 상징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황금팔을 가진 사나이>의 포스터와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는 1950년대 할리우드에 대단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솔 바스는 당대 최고의 감독이었던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의 러브콜을 받으며 승승장구하게 된다. 히치콕과 작업하면서 솔 바스는 당시로서는 가히 혁신적인 수준의 키네틱 타이포그래피(kinetic typography)를 선보이며 자신의 네임밸류를 입증했다. <현기증>(1958),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 <싸이코>(1960) 같은 작품들은 요즘 영화들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오늘날 <세븐>(1995)이나 <캐치 미 이프 유 캔>(2002) 같은 영화의 인상적인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는 솔 바스로부터 어느 정도 빚을 지고 있는 셈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까.

컨티넨털 에어라인, 딕시, 미놀타, YWCA 등 솔 바스가 디자인한 기업 로고
솔 바스가 영화 쪽 일만 한 것은 아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비롯한 해외 여러 기업들의 로고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그가 제작한 로고들은 각 기업에서 평균 34년 이상 변경 없이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일반적인 기업 로고의 수명보다 상당히 긴 편이라는 조사 결과도 나와 있다고 하니, 솔 바스의 시각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비단 영화에만 국한되어 있던 것이 아님을 짐작해볼 수 있다.

1990년대 마틴 스콜세지와의 만남, 영면 전 해까지 계속된 커리어
솔 바스는 직접 영화를 연출하고 제작까지 할 만큼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쳤다. 그는 수 편의 단편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으며, 1968년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 <왜 인간은 창작하는가(Why Man Creates)>로 오스카 트로피를 수상했다(그는 다섯 번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공식 포스터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언제까지고 승승장구할 수 많은 없는 일이다. 오르막의 끝에는 반드시 내리막이 있다. 1980년대말부터 솔 바스의 커리어는 점차 막을 내리는가 싶었다. 하기야, 약 40년간 할리우드의 크리에이터로 활약했던 그였다. 그런데 마지막 반전이 극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말년의 솔 바스를 강제소환(?)시킨 주인공은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 솔 바스는 1990년대 스콜세지의 주요 작품인 <좋은 친구들>(1990), <케이프 피어>(1991), <순수의 시대>(1993), <카지노>(1995)의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를 제작했다. 솔 바스가 1996년에 영면했다는 점을 떠올려보건대, 그는 말하자면 죽음이라는 '엔딩'이 가까워질 때까지 줄곧 자기 삶의 영사기를 성실히 작동시켜왔던 것이다. 솔 바스는 자신의 작업에 대하여 “평범한 것을 비범한 것으로 만들기(Making the ordinary extraordinary)”라고 설명한 바 있다. 만약 솔 바스의 전기 영화가 나온다면, 포스터 문구로 제격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