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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그래픽 디자인의 거장 ‘카럴 마르턴스: 스틸 무빙’전 조회수 20991

디자인에서 시적 감성과 수학적 사고가 만나면 어떤 모습을 이룰까. 이 상반된 세계의 조화로 특유의 디자인 미학을 선보인 디자이너가 있다. 네덜란드 현대 그래픽 디자인의 거장 카럴 마르턴스(Karel Martens, 1931~)다. 

 

카럴 마르턴스(사진제공: 플랫폼엘 컨템포러리아트센터)

 

 

카럴 마르턴스는 숫자나 글자 같은 텍스트를 수학적 알고리즘을 통해 색과 모양 등의 이미지로 치환해 표현했다. 그의 디자인에서 시적 감수성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이미 사용한 봉투나 고지서 등 과거가 있는 종이 매체에 인쇄하거나, 버려진 자동차의 부품과 같은 시간성을 지니는 금속 오브제로 종이에 압력을 주어 인쇄하는 등, 일상 속 평범한 소재들을 활용한 독창적인 디자인 아이디어를 선보였다.

 

60년간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작가, 교육자로 활동해온 카럴 마르턴스는 수집한 다양한 물건들을 이용해 레터프레스 모노 프린트를 선보였으며, 네덜란드의 동전과 우표, 전화카드를 디자인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98년 네덜란드 아른험에 베르크플라츠 티포흐라피(Werkplaats Typografie)를 설립, 후학양성에 힘써온 그는 슬기와 민, 김영나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국내의 많은 디자이너를 가르친 스승이기도 하다.  

 

 카럴 마르턴스의 국내 첫 개인전 ‘카럴 마르턴스: 스틸 무빙(Still Moving)’이 플랫폼엘 컨텀포러리아트센터에서 개최된다. 

 


〈오아서(OASE)〉 설치전경

 


카럴 마르턴스의 스케치도 볼 수 있다. 

 

 

전시의 제목 ‘스틸 무빙(Still Moving)’은 정지 사진(Still Photograph)의 ‘스틸(Still)’과 움직이는 사진, 즉 영상을 뜻하는 ‘무빙(Moving)’을 조합시킨 것으로, 장르와 매체, 이성과 감성의 영역을 넘나드는 그의 작업 세계를 나타내면서 동시에 여전히 활발하게 작업하는 그의 활동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시에서는 그래픽 디자인 분야의 독보적인 아이콘이 된 그의 전통적 인쇄매체 기반의 디자인 작업부터 인터랙티브 미디어 설치작품까지, 아날로그와 디지털, 이미지와 텍스트, 응용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세계를 통해 그만의 시적인 감성과 수학적이고 합리적인 체계의 결합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전시 작품 중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는 〈오아서(OASE)〉를 꼽을 수 있다. 〈오아서〉는 네덜란드어로 ‘오아시스(OASIS)’라는 뜻을 지닌 37년 역사의 건축 간행물로, 〈오아서〉의 100호 발행을 기념해 마르턴스가 작업을 시작한 28호(1990년)부터 100호까지 전 오아서 디자인 스프레드와 스케치, 실물들이 전시된다. 17×24cm의 크기로 작업 당시 가장 파지 배출이 적은 크기로 디자인된 간행물들은 그의 디자인의 다양성과 일관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전시전경

 


카럴 마르턴스만의 독특한 작업세계를 보여주는 〈모노 프린트 시리즈〉 

 


그가 수집한 물건들이 함께 전시된다. 

 

 

그만의 독특한 작업 방식, 작가로서의 신중함과 끈기를 보여주는 〈모노 프린트 시리즈〉는 반복과 조화, 리듬과 대비 등 형태에 대한 조형 원리와 색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하는 바탕이 됐다. 길에서 주운 오브제들에 잉크를 묻혀 용도를 다한 종이 인쇄물 위에 하루에 한가지 색만을 인쇄하는 느리지만 섬세한 의미 있는 작업들을 볼 수 있으며, 그가 수집한 물건들도 함께 전시된다. 

 


이번 전시를 위한 신작 〈Time Difference Between Amsterdam and Seoul〉

 

 

카렐 마르턴스는 60년대 후반부터 일상적 소재인 시계에 그래픽적 모티브를 덧붙여 새로운 컴포지션에 대해 실험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플랫폼엘 커미션으로 선보이는 신작 〈Time Difference Between Amsterdam and Seoul〉을 선보인다. 인쇄매체에 대한 모티브를 보여주는 동시에 착시현상을 활용한 옵 아트(Optical Art)의 관점에서도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암스테르담과 서울의 시차 8시간을 암시하며, 그의 작업실이 위치한 암스테르담과 서울 플랫폼엘과의 물리적, 문화적 거리를 수학적이면서도 시적으로 표현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수많은 그래픽 배열을 보여주는 〈Three Times〉. 태극기의 청색과 적색을 참고했다. 

 


여러가지 영상작품도 볼 수 있다. 

 

 

시계를 활용한 또 하나의 키네틱 작업 〈Three Times〉은 좀 더 직관적으로 시간을 표현한다. 시, 분, 초를 나타내는 원형 그래픽 도형은 태극기의 적색과 청색을 참고해 디자인됐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수많은 그래픽 배열을 보여준다. 

 

26개의 글자로 모든 단어와 문장을 만들 수 있는 알파벳에 대한 경의를 표한 〈TOL〉을 비롯한 여러 영상작업도 볼 수 있다. 

 


카럴 마르턴스의 스튜디오를 재현한 공간

 

 

카럴 마르턴스의 스튜디오를 재현한 공간에서는 아이콘으로 표현한 스튜디오 창밖의 풍경, 그가 수집해온 여러 가지 물건들과 그가 디자인한 네덜란드 공식 전화 카드, 동전, 우표 등의 작업물을 볼 수 있다. 또한 하이네켄 예술상을 수상, ‘네덜란드에서 가장 디자인이 잘 된 책’, ‘세계 최고의 서적’으로 선정된 그가 디자인한 책도 전시돼 있다. 

 

〈Colours on the Beach〉 전시 공간

 


중정에는 설치돼 있는 캐빈

 

 

〈Colours on the Beach〉는 2017년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지역의 도시 르아브르(Le Havre)에서 그 지역의 독특한 풍경을 이루는 흰 캐빈들에 색을 입히는 대형 작업으로, 숨은 메시지가 담긴 6가지 폭, 10가지 색채를 사용해 다양성을 통한 통합을 보여주는 일종의 ‘안무적 파노라마(Choreographic Panorama)’를 완성시켰다. 플랫폼엘의 중정에는 그가 디자인한 캐빈이 재현, 설치돼 있다. 

 


인터랙티브 미디어 설치작업 〈Icon Viewer〉

 

 

중정에 설치된 또 하나의 작품 〈Icon Viewer〉는 인터랙티브 미디어 설치작업으로, 15년 이상 그가 연구해온 아이콘-픽셀 언어의 확장에 대한 작업이다. 다양한 색상과 형태의 수 천 가지 아이콘을 배열해 특정 이미지를 형상화, 프린트 해온 그는 이번 전시에서 관객과의 소통을 위해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관객의 움직임을 무빙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움직임에 따라 아이콘이 변화하며 화면에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의 그래픽 디자인은 슬기와 민이 맡았다. 아트숍에서는 김영나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전시 연계 상품도 볼 수 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상반된 것들의 결합, 그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조합을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2019년 1월 20일까지 열린다.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원문 : https://www.jungle.co.kr/magazine/200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