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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디톡스를 찾는 사람들 조회수 21730

'이너피스(inner peace)'. 해석하자면 '내면의 평화'라는 의미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쿵푸팬더〉에서 진정한 용의 전사가 되는 마지막 단계로 사부는 '이너피스'를 외친다. 모든 쿵푸의 고수가 도달해야 할 정점은 내면의 평화라면서.


하지만 바쁜 일상에서 이너피스를 찾기란 쉽지 않다. 작정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고자 하면 온갖 생각과 현실이 발목을 잡는다. 현대인의 이너피스를 돕기 위해 오로지 '쉬기'에 초점을 맞춘 펜션이 있다. 여행이란 모름지기 이름난 관광지를 찾아다니며 견문을 넓히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비튼 자연 속 고립형 펜션. 눈부신 신록의 나무 그늘을 우산 삼아, 새소리를 벗 삼아, 두 볼을 간질이는 바람을 반찬 삼아, 쏟아질 듯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을 이불 삼아 온몸으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미국의 이색 펜션이다. 

 

겟어웨이 펜션(사진출처: getaway.house)

 

 

1.  숲속 미니멀 라이프 '겟어웨이'
성냥갑을 연상시키는 작은 나무 상자에 창을 크게 뚫어 풍경을 두 눈에 충분히 담을 수 있도록 설계한 '겟어웨이(Getaway)' 펜션. 이름 그대로 '일상에서 벗어나라, 탈피하라'라는 의미로 최대한 외딴 자연 속 고립을 추구한다. 내부는 원목 결을 그대로 살려 실내면서도 실외 숲속 한복판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겟어웨이는 중독에 가까운 집착증을 보이는 사람들을 위해 잠시 기계를 내려놓는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를 처방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쉬는 것에 초점을 맞춘 장소인 만큼 펜션 안에 와이 파이, 인터넷 연결은 없다. 직장 상사의 이메일 업무지시, 귀찮은 전화 따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게 인터넷, 와이 파이를 인위적으로 차단했다. 속세와의 연결고리를 잠시 끊고 자신에 집중하라는 의미로 휴대전화 보관 상자가 있다. 


 

 

 

 

 

 

겟어웨이 펜션(사진출처: getaway.house)

 

 

통신시설은 그렇다 치고 이곳에는 거울도 없다. 심지어 화장실조차 거울이 없다. 이것 또한 거울보고 단장할 시간에 자신에 집중하라는 의미의 연장선이다. 겟어웨이 펜션은 휴대전화에 얼굴을 파묻은 채 웹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현실로 돌아와 서로 얼굴 보고 대화하기를 권유한다. 인터넷 단절에 당혹스러운 사람들을 위해서는 주변 국립공원 산책로 안내 지도와 스도쿠, 보드게임 같은 오락거리를 준비했다.    


예약 후 입력한 전자우편으로 펜션 비밀번호가 전송된다. 도어락을 열고 오두막 펜션 안에 들어갈 때까지 마주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상 상황에 전화나 문자를 할 수 있을 뿐 철저히 무인 시스템이다. 내부에는 침대와 샤워 시설, 화장실, 취사시설 등 필요한 건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피곤한 현대인들이 누구의 방해도 없이 온전하게 쉴 수 있도록 한 겟어웨이의 배려다. 


원래 겟어웨이는 펜션이 아니라 집이었다. 하버드대학교 동문인 존 스태프(Jon Staff)와 피트 데이비스(Pete Davis)가 재학 시절 연구 과제로 소형 주택 견본을 만든 것이 발단이었다. 날로 복잡해져 가는 현대 생활에 염증을 느낀 두 사람은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최소한의 것으로 단순하게 살고자 이동형 목조 오두막을 만들었다. 그들의 바람을 담은 첫 오두막은 미국 북동쪽 뉴햄프셔에 놓았다.

 

운치 있는 별장 같은 느낌의 이동형 주택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자 두 사람은 밀레니얼 하우징 랩(Millennial Housing Lab)이라는 건설 회사를 세우고 본격적인 소형 주택 개발에 나섰다. 이후 보스턴, 뉴욕, 워싱턴 D.C., 애틀랜타 순서로 오두막 수를 늘려갔다. 현재는 빌려주는 별장 개념의 펜션으로 운영 중이다. 
겟어웨이 펜션 하루 이용 요금은 99달러(약 11만 원)부터 189달러(약 21만 원)까지 다양하며,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다.   
 

데스 밸리 하우스(사진출처: archive.nytimes.com, Photo by Joe Fletche)

 

 

2. 사막의 이색 풍경 속으로 '데스 밸리 하우스'
번뇌와 스트레스 지수가 높다면 외딴 사막 한복판에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방법을 추천한다. 이름 그대로 죽음의 계곡이라 불리는 미국 네바다주 데스 밸리(Death Valley) 사막이다. 이곳은 사방이 뻥 뚫린 사막 고원에 자리 잡고 있어 석양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풍경이 일품이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사막에 우뚝 선 모습이 마치 사바나 초원의 사자 같다.


110㎡ 규모에 방 3개, 욕실 2개, 주방 겸 거실이 전부인 자그마한 펜션이다. 내부 인테리어는 네바다 데스 밸리 사막의 특징을 살려 디자인했다. 사막 주변 선인장에서 영감을 얻어 화장실을 온통 초록색 타일로 장식했고, 식탁 의자와 펜션 곳곳에 놓인 소품은 빨간색으로 포인트를 줬다. 펜션을 설계한 건축가 페터 체브니악(Peter Strzebniok)은 야생 뱀조차 살지 못하는 네바다 사막의 뜨거운 열기를 표현하기 위해 빨간색 소품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대낮에는 섭씨 38도에 이를만큼 무덥지만 외부 열기를 차단하기는커녕 곳곳에 큰 창을 뚫어 햇살이 그대로 집안에 비치도록 했다. 심지어 천장마저 유리창을 뚫어 침대에 누운 채 별자리 감상이 가능하다. 통유리는 언제든지 활짝 열어 발코니 확장이 가능하다. 이 또한 사막과 펜션의 경계를 지워 실내에서 사막의 지형적 특징을 그대로 느끼기 위함이다. 대신 콘크리트 받침대 위에 건물을 얹는 방식으로 지열이 흡수되는 것을 최소화했고, 바닥에서 천장까지 높이를 2m 75cm로 높였다.  

 

독채 펜션인데다 주변은 사람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드넓은 사막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집안을 들여다볼 걱정, 자동차 소음·매연 걱정 따위는 필요 없다. 덕분에 사생활은 완벽하게 보장되지만 척박한 환경 탓에 주변 산책이 어렵다. 데스 밸리 펜션은 창가에 작은 책상과 스탠드를 배치해 펜션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사막 풍광을 바라보며 책을 읽게 했다. 설계 초기에는 인터넷조차 연결되지 않았지만 이용객들의 불만이 속출하자 몇 년 전 무선 와이파이를 설치했다.   

     


  

 

 

 

 

데스 밸리 하우스(사진출처: archive.nytimes.com, Photo by Joe Fletche)

 

 

상업적으로 흥행 요소가 전혀 없는 이 펜션을 도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지은 것일까? 이탈리아 기자인 파브리지오 론도리노(Fabrizio Rondolino)는 아내와 함께 사막 여행을 즐겼다. 그러던 중 네바다 데스 밸리와 깊은 사랑에 빠졌다. 결국 16만㎡ 규모의 대지를 사들여 2010년에 이 집을 지은 뒤 두 딸을 데리고 로마를 떠나 미국에 정착했다. 현재는 일 년에 한 달 정도 론도리노 가족이 휴가를 보낼 때에만 이 집을 사용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에어비앤비 같은 숙박시설로 운영한다. 
일주일 이상 묵을 장기 투숙객만 이용할 수 있으며, 하루 이용 요금은 468달러(약 53만 원)이다. 


브라이튼부시 핫 스프링(사진출처: breitenbush.com)

 

 

3. 치유를 위한 명상 체험 '브라이튼부시 핫 스프링'
한국식 사찰 체험, 템플 스테이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미국에도 있다. 한국과 비교했을 때 종교적 색깔이 없을 뿐, 템플 스테이와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운영된다. 욕심을 버리고 자연과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기본 정신이 닮았다.  


미국 오리건주 브라이튼부시 핫 스프링(Breitenbush Hot Springs)은 휴양과 교육을 접목한 온천 시설이다. 이 지역은 태평양판이 북아메리카판으로 밀려들어가는 환태평양 조산대 구조로 유난히 지진이나 화산활동이 활발해 자연 온천들이 많이 발달해 있다. 특히 1900년대 초반부터 운영된 이 온천은 낡고 허름한 겉모습에 실망하고 들어섰다가 제대로 된 물맛을 보고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나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지금의 외관은 1977년 부동산 개발업자인 알렉스 비머(Alex Beamer)가 인수해 새 단장한 이후 그대로 운영하고 있다. 


시설이라고는 숲속에 무심한 듯 푹 파놓은 노천온천이 4개, 자그마한 오두막 사우나 1개가 전부다. 하루 숙박 가능 인원은 40에서 50명 남짓.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몰렸을 때 시설이 오염될 것을 우려해 하루 입장 인원을 제한하고 있다. 여느 온천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전화도, 인터넷도, 와이파이도 없는 고립무원의 상황이라는 것. 이곳은 근처 강에서 생산하는 자체 전력만으로 시설을 운영하기 때문에 헤어드라이기, 커피포트, 노트북 같은 개인 전자 기기는 가져갈 수 없다. 타임머신을 타고 먼 옛날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시절로 돌아가 원시 체험을 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브라이튼부시 핫 스프링(사진출처: breitenbush.com)

 

 

개인적으로 준비해 갈 것은 양말, 속옷과 칫솔뿐. 음식은 모두 유기농 야채 식단으로 제공되는데, 다녀온 사람들은 아무리 육식 체질이라 해도 이곳의 샐러드가 워낙 신선하고 달아서 맛있게 즐길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휴대전화를 손에서 내려놓은 사람들은 브라이튼부시 핫 스프링이 운영하는 자체 교육 과정에 참여한다. 명상과 요가, 마사지, 채식 요리 교실 등 수십 가지에 이른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활동을 원하지 않는다면 근처 숲과 강을 친구 삼아 홀로 등산을 해도 좋다. 몸과 마음의 건강한 균형을 맞춰줄 최적의 장소인 셈이다. 
숙박 없이 한나절 온천 체험은 22달러(약 2만 5천 원)부터, 통나무집 숙박은 하룻밤에 100달러(약 11만 원)부터 170달러(약 19만 원)까지 다양하다. 

 

글_ 이소영 워싱턴 통신원(evesy0220@gmail.com)

출처_https://www.jungle.co.kr/magazine/200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