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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 ‘인간, 물질 그리고 변형-핀란드 디자인 10 000년’전 조회수 19823

디자인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또 그 가치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디자인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는 전시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인간, 물질 그리고 변형-핀란드 디자인 10 000년(Man, Matter, Metamorphosis-10 000 Years of Design)’전이다.  

‘인간, 물질 그리고 변형-핀란드 디자인 10 000년’전 포스터

 

 

국립중앙박물관이 핀란드국립박물관과 함께 마련한 이번 전시는 핀란드의 물질문화와 디자인의 가치를 탐구하는 특별전으로, 2018년 10월부터 2019년 2월까지 개최된 핀란드국립박물관 특별전 ‘디자인의 만 년’의 세계 첫 순회전이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하는 최초의 북유럽 역사 문화전시다. 

 

‘디자인의 만 년’전은 건축가 플로렌시아 콜롬보(Florencia Colombo)와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 빌레 코코넨(Ville Kokkonen)가 공동으로 기획했다. 전시는 자그마치 1만년의 핀란드 물질문화와 디자인의 가치를 다루며, 핀란드 디자인의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험해왔던 디자인 전시와는 디자인에 대한 접근 방식부터가 다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디자인 혹은 형체를 가진 모든 것을 풀어놓고 역발상을 통해 사물들을 새롭게 분류했다. 

 

(좌측부터)<양날 도끼> 돌, 루오베시 출토, 석기시대 ⓒ 핀란드문화재청 민족학자료컬렉션, <필루 형식 도끼> 나무-철, 케미예르비 출토 ⓒ 핀란드국립박물관 민족학자료컬렉션, <노키아 커뮤니케이터 9000i> 모바일폰, 1996 ⓒ 헬싱키디자인박물관 컬렉션. 인간이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는 환경에 따라 변화한다. 휴대폰은 현대인에게 가장 유용한 생존도구다. 

 

 

전시에서는 돌도끼와 휴대폰이 짝을 이루고, 나무썰매와 현대스키, 곰의 뼈와 현대 디자인 의자가 나란히 자리한다. 이색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사물들의 조합은 인간과 물질, 사물과 기술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이번 전시의 핵심 포인트다. 감성적인 해석을 담은 전시 설명 역시 전시된 사물들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하는 힌트를 던진다.

 

이번 한국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과 핀란드국립박물관의 협업으로 전시 내용이 재구성됐는데, 고고학 유물부터 민속품, 현대 산업디자인 제품, 사진과 영상 등 핀란드 문화유산이 망라되는 가운데, 유사한 형태나 기능, 목적을 지닌 20여 건의 한국 유물이 함께 전시, 인류 문화의 보편성을 함께 전한다. 

 

<스툴> 나무, 사비타이팔레 출토 ⓒ 핀란드국립박물관 민족학자료컬렉션. 나뭇가지 그대로를 활용해 만든 의자. 창조적 과정은 인간이 자연과 환경을 해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02D 294> 부조, 알바 알토(Alvar Aalto), 자작나무 베니어판, 1947 ⓒ 알바알토박물관. 핀란드의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했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알바 알토의 부조 작품으로, 그는 이 부조를 제작하기 위해 공장에서 장식장을 제작하는 장인의 손을 빌렸다. 가구 다리를 L자 형태로 적절히 구부리기 위해 진행한 일련의 실험 결과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작품은 나무를 결에 맞춰 세로로 잘라 구부리는 원리를 표현하고 있다. 인간의 환경과 끝없는 관찰, 끊임없는 물질과의 상호 관계성에서 도출되기도 하는 창의성을 볼 수 있다. 
 

 

전시는 6가지의 주제로 구성된다. 1부 ‘인간은 사물을 만들고, 사물은 인간을 만든다’는 인간과 물질이 만나는 중요한 출발점으로, 인간과 물질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은 물질을 탐구하면서 더 다양한 지식을 얻었고, 물질은 인간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됐다. 기술 혁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간의 생물학적, 문화적 진화, 재료에 대한 탐구를 통해 모든 감각을 활용하는 직관력을 키우게 된 인간을 볼 수 있다. 

 

2부 ‘물질은 살아 움직인다’에서는 인간도 물질의 일부였음을 일깨우며, 물질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발견, 착취를 동반해온 인간과 물질 사이의 관계, 시간과 문화에 따라 계속 진화해온 물질의 가치에 대해 다룬다. 이곳에서는 시간적 거리에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닌 물질도 발견할 수 있다. 

 

<부츠> 가죽-나무, 포리 출토 ⓒ 핀란드국립박물관 민족학자료컬렉션(좌), <설피> 나무, 코르필라티 출토 ⓒ 핀란드국립박물관 민족학자료컬렉션(우). 효율적인 이동 방법을 찾기 위한 인간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유물로, 인간과 땅의 상호작용과 관련된 많은 것들을 설명해준다.

 

 

3부는 ‘사물의 생태학’으로 인간과 자연 사이의 공생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생태계의 다양한 특성을 숭배하고 심오한 지식을 터득하면서 하나의 공통된 물질문화와 기술전통, 독특한 식단을 갖게 된 인간의 사냥과 채집, 사슴 방목, 경작 등 새로운 자연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생계 시스템과 이와 관련된 다양한 물품들을 통해 핀란드인의 정서와 핀란드적 디자인의 바탕에 대한 풍부한 관점을 제공한다. 

 

4부 ‘원형에서 유형까지’에서는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원형’과 다양한 형태로 진화를 거듭하는 ‘유형’의 속성을 제시, 뿌리 깊은 원형의 존재에 관해 생각하게 한다. 비교 전시돼 있는 다양한 사물들을 통해 하나의 사물이 가진 원형과 거기에서 파생된 다양한 유형들을 비교 감상할 수 있다. 

 

5부는 ‘초자연에서 탈자연으로’로, 다양한 상징체계와 주술, 제의(祭儀)로 표출된 과거의 초자연적인 대상에 대한 두려움과 욕망, 디지털 세계라는 새로운 신앙 체계를 맞이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삶을 통해 인간의 환경에 대한 이해를 신앙체계라는 관점에서 살펴본다.  

 

<라이티넨 SS2010> 남성 수트, 디지털 프린팅한 면, 크리스 비달 테노마와 협업으로 고안한 투오마스 라이티넨의 ‘테크 그리드(Tech Grid)’ 문양, 2009 ⓒ 핀란드국립박물관. 핀란드의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투오마스 라이티넨(Tuomas Laitinen)이 ‘배틀스타 갈락티카(Battlestar Galatica)’나 ‘새파이어 앤 스틸(Sapphire & Steel)’과 같은 공상 과학 시리즈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다고 알려진 남성 수트로, 미래형 인간에 관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마지막으로 6부 ‘사물들의 네트워크’에서는 사물의 표준화, 응집성, 효율성, 모듈성 등, 관계 속에 존재하며 특정한 상황에서 만들어지고 기능하는 사물의 관계성에 대해 살펴본다. 모듈성은 이번 전시의 주요 전시 개념으로, 이번 특별전은 모듈성을 활용한 진열장을 직접 제작, 설치해 입체적인 전시 공간에서 그 개념을 구현하기도 한다. 

 

관람의 이해를 돕기 위한 다양한 공간도 마련된다.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감각적으로 느끼게 하는 영상이 상영되는 프롤로그 디지털 존, 핀란드의 자연 풍경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원목으로 만든 사우나 공간을 비롯해 영상을 통해 만나는 대형 오로라, 모듈 형태의 체어에서 듣는 시벨리우스의 음악 등은 핀란드 디자인이 탄생하게 된 자연환경과 핀란드 디자인의 근원을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디자인을 넘어 사물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는 이번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1층 특별전시실에서 2020년 4월 5일까지 열리며, 국립김해박물관(2020. 4. 21~2020. 8. 9)과 국립청주박물관(2020. 8. 25~2020. 10. 4)에서 이어진다. 

 

글_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_ 국립중앙박물관 

출처_ 디자인정글(https://www.jungle.co.kr/magazine/2014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