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인터뷰] 긍정적인 에너지로 희망 전하는 이주연 작가 | 조회수 | 22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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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작가는 장애인이다. 모든 것이 새로울 한창 때인 20대에 사고로 아픔을 겪었다. 경추 3, 4, 5번을 다쳐 팔과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 그녀는 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다른 젊은 이들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20대와 30대를 침상에 누워 지내며 그녀가 할 수 있었던 건 죽음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이주연, <나의 살던 고향은>
“너무나 고통스러웠죠.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 버거웠습니다.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매일같이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창밖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던 것이 없었을 당시 그녀는 우연히 한 마리의 나비를 보게 됐다. “어느 날 창문 밖을 내다보는데 담벼락에 앉은 나비가 눈에 들어왔어요. 담벼락에 앉았다 다시 날고 또 다시 앉았다 날기를 반복하고 있었죠. 그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자신이 앉을 자리를 찾기 위해 저 작은 나비도 저렇게 끊임없이 날갯짓을 하는구나. 모든 일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순간 깨달은 것이죠.” 자신의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생각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은 그녀는 자신의 새로운 삶을 위해 날갯짓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작업을 하는 이주연 작가
그녀가 작가가 된 것은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에 의해서였다. “경제적인 문제까지 더해져 무척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로 가평꽃동네 희망의집 장애인 요양원에 들어가게 됐어요. 다른 장애를 가진 여러 분들을 보며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찾다 장애인들도 그림을 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전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주연, <꿈>
이주연, <봄나들이>
가평꽃동네 희망의집 장애인 요양원에서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미술 수업을 들으며 처음 붓을 잡게 된 그녀는 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그림을 그렸다. “손을 사용할 수 없으니 입으로 연필과 붓을 물고 그림을 그렸어요. 선을 긋고 면을 칠하면서 훈련을 해갔죠.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좋았지만, 자신의 내면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무척 매력을 느꼈습니다.”
수채화로 시작했지만 자신의 색을 구축하기 위해 아크릴이라는 소재를 사용하기 시작하며 이 작가는 서서히 작품 세계를 펼쳐 나갔다.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내가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하게 됐고, 아크릴이라는 소재를 알게 됐습니다. 아크릴은 손을 이용한 섬세한 터치를 할 수 없는 제가 그림을 그리기에 매우 적합한 소재였어요. 아크릴을 접한 이후 차츰 아크릴만의 특유의 색감과 질감을 통해 캔버스 위에 저의 이야기를 펼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주연, <내 고향 꿈의 바다>
이 작가의 작품 이야기는 ‘고향’에서 시작됐다. “어느 날 고향인 부산에 가게 됐는데, 유년시절의 따뜻한 추억이 담겨있던 집이 사라져 있었어요. 많은 것이 변화한 모습이었죠. 아쉽고 서운했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고향’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드넓은 바다에서 영감을 받아 고향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한 그녀의 작품 세계는 점차 확장됐다. 여행을 쉽게 갈 수 없는 그녀는 자연풍경을 배경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산이나 바다, 들과 같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을 담습니다. 우리의 일상, 현대인들의 삶의 방식을 표현하고 있어요.” 지금까지의 삶, 큰 어려움을 겪었던 자신의 경험들은 물론, 일상의 사소한 이야기들이 이 작가 작품의 스토리가 된다.
이주연 작가와 스승 이상미 작가
이주연, <동행>
이주연, <동행>
몸이 자유롭지 않아 손에 보조기를 착용한 채 붓질을 하거나 입으로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는 그녀는 다작을 하진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그림을 그린다. 올해로 그림을 그린 지 23년째에 접어든 그녀는 전시에도 꾸준히 참여해왔다. 그동안 가졌던 전시는 무려 100여 회. 중구길벗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도움으로 자립, 여러가지 지원을 받으며 현재 작가로서의 독립적인 삶을 살고 있는 그녀의 작품은 세브란스 병원에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3번의 개인전과 현재 계획돼 있는 전시를 모두 포함하면 97회에 달한다.
이주연 작가
그녀는 9월 1일부터 3일까지 청와대 헬기장 일대에서 열리는 장애인문화예술축제 ‘그곳에서 비로소예술’과 9월 15일까지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리는 장애예술인 특별전시 ‘국민 속으로, 어울림 속으로’, 10월 18일부터 21일까지 대학로 이룸센터에서 열리는 한국장애인미술협회전,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노원구청에서 열리는 ‘노원미술전’에 참여하기 위해 작업하고 있다.
밝고 강렬한 색감을 선보이는 이 작가는 이번 전시들을 통해 자신이 경험했던 아픔보다 지금 자신을 있게 해준 희망, 자신을 도와준 많은 분들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고자 한다. “이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생각해요. 저 역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고, 그래서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제 그림을 통해 많은 분들이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yjchoi@jungl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