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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할수록 강하다 조회수 17244

디자이너 롭 베일리는 디자인계를 떠나 일러스트레이션의 세계로 이동하는 중이다. 인생에서 단순한 것들에 가장 만족감을 느끼는 이유를 그가 설명한다.

기사제공 | 월간CA 2012 5월호


작년 말 자신의 새로운 웹사이트를 만들고 국제적인 클라이언트도 확보한 맨체스터의 일러스트레이터 롭 베일리(Rob Bailey)는 로켓처럼 힘차게 날아오르는 중이다. 그러나 지금 그가 즐겁게 하고 있는 일들은 처음부터 그가 선택한 방향은 아니었다. “솔직히 고백하면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단지 우연히 거기에 빠졌을 뿐이다.”라고 그가 시인한다.

베일리는 맨체스터 매트로폴리탄 대학(Manchester Metropolitan University)에서 애니메이션과 일러스트레이션 학사 과정을 밟는 동안 오히려 다른 분야에 더 관심을 쏟았다. “대학을 다닐 때 정말 애니메이션이나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많이 하지 않았다. 지도 교수들은 모두 화가 아니면 판화가였고 그들로부터 대단히 큰 영향을 받았다. 졸업하던 해에 했던 마지막 프로젝트도 거대한 벽 조각(wall sculpture)이었다.”
학업 과정의 마지막 해에 가서야 그는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을 발견했고 이후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에 본격적으로 전념하게 됐다. 그런 소프트웨어를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던 터라 일러스트레이터의 기능에 놀랐고 또 만족스러웠다. “일러스트레이터를 만나기 전까진 연필과 잉크만 사용했다. 원하는 만큼 예리하고 깔끔한 선을 얻지 못해 불만이었다. 벡터라는 건 상상도 못했던 존재였다.” 그가 털어 놓는다.

새롭게 발견한 이 소프트웨어를 자신의 무기로 장착한 후 베일리는 머릿속에 있던 특별한 아이디어를 이미지로 실현해 내기 시작했다.
“사물의 특징을 얼마나 취해야만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볼 수 있을지 늘 궁금하게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이를 알아보는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이미지임에도 사람들이 이를 알아봐 줄 때 내가 느끼는 보람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이런 개념은 그의 포트폴리오 전반에 분명히 드러난다. 이제 그의 미니멀리스트 그래픽 기풍은 마치 이름처럼 그를 대표한다. 주변 세상에 대한 그림을 그려오면서 베일리는 자기가 갖고 있는 다양한 자원을 자랑하는 것으로 디자인을 시작한다. “나는 백과사전 수집가다. 주로 중고품 가게나 자선가게에서 이들을 구하곤 한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땐 그것들을 훑어보거나 다른 자료들을 찾아 보면서 대상을 좀 더 흥미롭게 표현하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다.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게 그리되 어디까지 생략할 수 있는지 연구한다.”

모든 작품에서 베일리는 재료 사용에 대단히 엄격하다. “작업의 토대를 세울 땐 기본적으로 세 가지 정도의 색을 사용한다. 단순히 모양을 구분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런 다음 모양을 확정하는 단계에서 진짜 색을 선택한다. 어떤 때는 색이 모양을 유도하기도 하고 어떤 때엔 그 반대로 이뤄지기도 한다.”

학위 과정을 마쳐갈 무렵 베일리는 처음으로 상업적인 작업을 시행했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과 새로운 기술을 실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친구와 함께 준비한 클럽의 밤 행사 홍보 포스터 및 전단지를 만드는 일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내가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처음 한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판화로 포스터를 만들었는데 결과적으로 아름답게 나왔다. 잉크는 군데군데 말라 있었고 색 또한 정확히 인쇄되진 않았지만 나름 저렴하게 한 것 치고는 만족스러웠다. 디지털 프린트를 선택했더라면 얻지 못했을 일들도 가져다 주었다.”

베일리의 독특한 포스터들은 예술가 사이에 파란을 일으켰다. 베일리는 그들을 물리치고 베스트 오브 맨체스터(Best of Manchester) 수상자로 최종 선발됐고 정기적으로 전시가 열리는 커먼(Commom)이라는 지역의 어느 바에서 첫 단독 전시를 제안 받았다. 그 같은 긍정적인 반응에 힘입어 베일리는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에 계속 전념했고 남는 자투리 시간에는 맨체스터 지역의 갤러리에서 일했다.

이런 직업 연수 과정 중에 베일리는 이 지역의 현대예술 갤러리 뷰로(Bureau)의 디렉터이자 큐레이터인 소피아 크릴리(Sophia Crilly)를 만나게 되었다. “소피아는 항상 내 작업에 관심이 많았다. 로그 아티스트 스튜디오(Rogue Artists’ Studios)에서 1년 동안 프로젝트 스페이스(Project Space)를 추진할 당시 첫 선정자로 나를 선택해 주기도 했다.”
프로젝트 스페이스는 신예 예술가들에게 스튜디오 공간, 재료와 작업 비용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것은 몇 달 동안 나만의 작업을 개발하고 또 원하면 마지막에 전시를 여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나는 언제나 벡터 작업에 좀 더 몰두할 수 있기를 바랐고 따라서 아무 조건도 붙지 않은 채 8주라는 시간이 주어진 건 정말 내겐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작업 환경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내 침실에 있는 컴퓨터를 이 거대하고 텅 빈 스튜디오로 옮기기 위해선 여러 사람들에게 폐를 끼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그는 좀 더 많은 재능을 작업에 불어넣기로 결심했다. “수년째 표지판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내 친구가 비닐 플로터를 갖고 작업해 보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한 대 구입했는데 아름답게 채색된 비닐 두루마리 60개도 함께 샀다. 그리곤 절대 뒤돌아보지 않았다.”

이 새로운 방법은 베일리가 전통에서 멀어진 후 잃어버렸던 작업 방식을 연결해 주는 일종의 다리 역할을 했다. “플로터를 갖고 일하면서 벡터 작업에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었다. 컴퓨터로 일할 땐 작업과 거리가 생기기 마련인데 이는 말 그대로도 그렇고 은유적인 의미에서도 그러하다. 그러나 플로터를 사용하면서 나는 컬러와 선 두 가지 측면의 가장 중요한 특성을 얻을 수 있었다. 컬러는 더 섬세해졌고 선은 살아났다. 그러면서도 기계와 사람이 맺은 상호 작용의 흔적들, 그래픽을 더 멋지게 만든 작은 실수들과 행복한 우연이 발생했다.

처음 몇 달은 정말로 생산적인 시간이었다. 의뢰가 뒤따랐고 로그 아티스트 스튜디오를 계속 써도 된다는 제안도 받았다. 그러나 베일리는 직업을 찾는 데에 있어서 자신이 주도적이길 원했다. 그의 선택은 맨체스터에 있는 일러스트레이션 에이전시 토이(Toy)였다. 현재는 없어졌지만 그곳에서 일할 때 베일리는 디자인 회사 코드 컴퓨터러브(Code Computerlove)가 영국 시월드(SeaWorld)의 웹사이트를 새로 단장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미 잘 알려진 일본의 퍼즐 액션 비디오게임 「카타마리 다마시(Katamari Damacy)」와 유사하게 온라인 테마파크를 다시금 구성하는 식으로 사이트를 디자인하는 일이었다.
“토이의 직원으로서 코드의 새 스튜디오 곳곳에 있는 유리 패널에 비닐 벽화 작업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코드의 일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베일리는 작업에 자원했고 결국 일을 따냈다. 롤러스케이트, 통나무 홈통, 동물, 여행객 등 사이트에 실릴 1,000개 이상의 항목을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주어졌다. “한 번에 실행한 작업으로는 가장 큰 규모의 일이었다. 3달 3일이라는 제법 충분한 시간 동안 일주일마다 두 번의 점검을 가졌다.”

최근 베일리는 2011년 12월에 만든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더욱 많은 일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독일의 주간지 『차이트 마가친(Zeit Magazin)』이 의뢰한 것이었다고 한다. “차이트 마가친은 내게 유명인을 그린 일러스트레이션 10세트를 요청했다. 12일이라는 작업 기간은 정말 희망적이었고 기존 캐리커처 작업에서 시도하기 어려웠던 극단적인 실험들을 해볼 수 있었다.”

그의 모든 작품들이 단순미를 뽐내는 한편 베일리는 미래에 대한 고민과 함께 자신의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여전히 단순미를 추구한다. 다만 지금은 전체적인 모양보다는 디테일에서 그러하다. 어떤 것이든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늘 갈고 닦으려 노력한다. 지금은 다 함께 모여 모양을 형성하고 작업에 생기를 불어넣는 소소한 디테일에 신경을 쓰고 있다. 진정으로 나의 작업에 어떤 변화가 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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