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로드 전시가 올 봄에 있었다. 이어서 타이완, 북경 순회전도 계획 중이다. 올 여름 한 철에만 북경, 베트남, 도쿄, 오사카를 다녀왔다. 베트남의 고대 도시 호이안을 디자인 브랜딩하는 총괄 작업을 맡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디자인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아시아 디자인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그는 단지 한 사람의 디자이너로 머물지 않는다. 개인 작업을 넘어 기획부터 진행까지 총괄하는 토털 디렉터다.
글 | 인현진 기사제공 | 타이포그래피 서울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기획하고 총괄하는 디렉터로서의 기질도 강하신가요?
오지랖이 넓어서 그렇죠(웃음), 지금은 그래픽 디자인만 잘 해서 필드에 나가면 오래 버틸 수가 없어요. 종합적인 프로듀싱을 하지 못하면 잠식당할 수밖에 없죠. 심볼 마크 하나 잘 만든다고 디자이너로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문화적 맥락을 찾아 거기에 맞는 디자인을 해나가는 게 중요하죠. 그러다보니 기획력이 반드시 필요하고요.
디자이너의 역할을 확장시키셨네요. 어떤 장점을 느끼셨나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요. 과거엔 사무실 2개를 운영하면서 일도 많이 했는데 소모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럼 어떻게 할까? 스스로 기획을 해서 클라이언트를 개발하자, 라고 생각했죠. 단지 전시 포스터 한 장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 전체를 기획하고 프로듀싱하는 게 디자이너의 진정한 역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계신 것 같아요. 컨텍스트를 생각하는 것도 강점이고요.
맥락, 관계, 컨텍스트. 그건 정말 중요해요. 다방면으로 많은 것들을 보이지 않는 것까지 이어서 볼 줄 알아야 하죠. 디자인은 숨어 있는 대각선을 찾는 거니까요. 예를 들어 청바지의 역사를 연표로 만들다가 영화와 접목하면 제임스 딘이 나타나고 음악과 접목하면 엘비스 프레슬리가 나오잖아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산업과 문화와 유행의 연결고리를 찾아 링크하면 새로운 디자인이 발견되죠.
아시아 디자인 네트워크를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서양이 쪼개고 분석하는 문화를 구축해왔다면 아시아는 수용하고 통합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공존의 지혜가 21세기의 패러다임이기도 하고요. 그걸 잘 풀어낸 사람이 스티브 잡스였던 것 같아요. 아시아가 갖고 있는 상상력, 문화적 특징은 잠재력이 어마어마해요. 다음 전시도 아시아 문자로 하고 싶고요. 아시아 디자이너와 함께 동반자로 어떻게 살 것인가는 앞으로도 계속 중요한 문제에요.
그의 손을 거치면 종이샘플북도 작품이 된다. 초대장은 큐브가 되고 화이트 종이는 근사한 파티 접시가 된다. 전시도록은 어지간한 화집이 부럽지 않다. 리플릿 하나에도 아이디어가 번뜩인다. 어떤 작업을 해도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는 노력과 열정이 결과물에 그대로 묻어난다.
페이퍼나 책에 대한 굉장한 애정이 느껴져요.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종이는 그래픽 디자이너의 그라운드잖아요. 표현하고자 하는 미디어니까요. 디지털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아날로그가 사라질 거라고 우려하는 분도 계시지만 종이가 주는 매력은 여전한 것 같아요. 캘리그래피처럼 손맛이 담긴 작업이나 우리 전통 한지에 대한 관심도 뜨겁고요. 종이가 갖고 있는 마티에르랄까, 자연에서 채취한 따뜻함이 참 좋아요.
서체에 대한 관심도 특별하시죠?
그래픽적인 요소가 피부나 근육이라면 타이포그래피는 뼈지요. 어떤 디자인에서도 가장 중요한 골격이라고 생각해요. 프레젠테이션 첫 화면의 폰트만 봐도 어떻게 작업했는지 알아요. 서체는 상황에 맞게 써야 해요. 예를 들어 딘(DIN)은 공공건물에는 어울리지만 클래식한 와인에는 어울리지 않겠죠. 서체의 탄생 배경을 제대로 배우려고 하지도 않고 멋있고 예쁘다는 이유로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걸 보면 막 화가 나요(웃음). 학생들에게도 타이포그래피에 대해선 굉장히 까다롭게 굴어요.
예쁘고 근사하게 잘 만드는 게 전부가 아니네요. 스킬이나 테크닉보다 디자인의 본질을 더 염두에 두시나요?
물론이죠. 본질에 접근하다보면 디자인은 자연스레 떠올라요. 예를 들면 페이퍼로드를 광주에서 전시할 때 현장에 가보니 컨테이너 박스가 전시회장인데 천정이 6미터에 벽만 있는 거예요.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죠(웃음). 한참 고민하다가 포스터의 숲을 만들자 생각해서 제목도 <포스터의 숲을 만나다>로 정했죠. 천정에서 바닥까지 포스터를 출력한 배너를 늘어뜨리고 외벽도 전나무 숲처럼 배너를 붙였어요. 리플릿도 숲이 연상되도록 부채처럼 접어서 전체 이미지를 연결했고요.
존경하는 디자이너는 누구신가요?
스승이신 스기우라 고헤이 선생님이네요. 일본유학을 결심한 이유도 그 분께 배우고 싶어서였으니까요. 아시아 도상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따를 사람이 없어요. 그 분이 이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어요. “일본문화는 비빔밥 같은 거야. 가장 메인인 쌀은 중국에서 받은 한자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 위에 올라간 다양한 나물은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받은 것들인데 한국은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고추장 역할이지. 일본이 한 일은 참기름 몇 방울 떨어뜨려 비빈 것밖에 없어.” 일본문화의 특징과 수용성을 비빔밥에 비유하신 게 인상 깊었어요. 저보다 한국문화에 해박하셔서 그분 덕분에 공부 진짜 열심히 했죠.
그는 목소리가 참 좋다. 그리고 담백하면서도 매력 있는 이야기꾼이다. 흐르는 강물 같은 그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던져두노라면 베트남의 오래된 고대도시에 있다가, 북경의 시끄러운 시장 한복판에 있다가, 통영의 외진 바닷가에 있다가, 어느새 도쿄의 서점 한 구석에 서 있다. 그의 마음 한쪽 어딘가에는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 바람이 불고 있다.
인간 김경균에 대한 주변인의 피드백은 어떤가요 ? 적이 많아요(웃음). 말을 돌리지 않고 직언을 하는 편이거든요. 선배건 공무원이건 틀린 건 틀리다고 그 자리에서 바로 얘기해요. 학생들에게도 작품비평을 강도 높게 하고요. 근거 없는 디자인해오면 이런 건 디자인이 아냐! 라고 해버리니까 눈물 쏙 빼는학생들도 많죠. 반면 오래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많아요. 사무실 운영할 때도 제 직원들은 다 제자였는데모두 독립시켰어요. 그래서 지금은 정보공학연구소 프로젝트 하면 밖에서 모여요. 제가 제일 적게 일하고 적게 가져가요(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