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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희생각① 좋은 땅도 비료가 필요한 이유? / 배춘희 칼럼 조회수 15991

1977년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독일로 건너가 기쎈(Gissen)에서 중고등 교육을 마치고 만하임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디자인(디프롬)을 전공했다. 이후 독일에서 20년 넘게 디자이너로 활동해 오다가 2008년 가을 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국에서 강의를 시작한 지 벌써 4년 하고 반년이 지났다.

대학교 입학생들이 강의실에 앉아있다.
아무도 말이 없다.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강의실에 앉아있다.


글│배춘희
기사 제공│타이포그래피 서울

아무런 질문도 아무런 대답도 없이 묵묵히 강의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 디자인과에 입학하기 위하여 미술학원에서 종일 그림을 그려야 했다는 학생들. 정해진 시간 내에 그림을 끝내지 못하면 매까지 맞았다는 학생들. 엄마가 걱정할까 봐 맞았다는 이야기도 못 했다는 학생들. 수많은 서러움과 두려움을 겪고 참아 온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디자인을 전공하기 위하여 강의실에 모였다. 우선 피곤하고 수줍음 많은 신입생들에게 다가가 같이 대화하고 같이 웃으면서 마음을 열게 하자. 마음의 문이 닫혀 있는데 창의력이 어떻게 빛을 보겠는가?

대학교 뒷산에 오른다. 명상하듯 숨소리에만 집중해 보라고 하지만, 묻는 말에는 대답이 없던 학생들이 왜 그리도 수다는 많은지. 산책하면서 낙엽을 하나씩 주워 강의실로 돌아온 학생들에게 "여러분은 언제 가장 행복한가요?"라고 물어본다. '잘 때'와 '놀 때'라는 단어가 쓰인 낙엽이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다. 자지도 놀지도 못했던 힘든 고등학교 시절을 말해준다.


한국의 부모님이나 선생님은 아무런 반항 없이 시키는 대로 하는 자식과 학생을 좋아하고 자랑한다. 남의 말을 잘 듣고 명령에 복종하는 학생들에게 자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학생들은 말한다. 자유를 아직 맛보지 못해서 모르겠다고….

면담 시간이다.
캠퍼스를 걸으며 학생들의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인다.

"무엇을 좋아합니까?"
좋아하는 것이 많단다.
"좋아하는 것도 잘합니까?"
그렇지는 않단다.

"잘하는 것을 찾으세요. 그리고 잘하는 것을 직업으로 택하고 좋아하는 것을 취미로 삼으세요."

난 1977년 독일로 가서 중학교 3학년에 입학했다.
첫 미술 시간이었다.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을 그렸다.
강에서 뛰어노는 아이들도 그렸다.

반 친구들이 내 그림을 말없이 쳐다본다.
내 그림은 반 친구들의 그림과 동일한 점이 하나도 없었다.
주제도 색감도 테크닉도.

난 그날 이후 만화 대신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학생들은 작은 팀으로 구성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남처럼'이 아닌 '남다른'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배운다. 정답이 없는 예술과 디자인이기에 학생들은 자기만의 답을 찾아 자기만의 스타일로 자기 인생을 디자인하는 방법을 시도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좋은 디자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교수는 좋은 교수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찾는 방법과 그것을 작품화시킬 수 있는 기술과 인내심을 체험하게 하고 가르치는 교수는 훌륭한 교수다. 무엇을 하는가에 중점을 두지 않고 어떻게 하는가에 중요성을 두어 학생을 칭찬하고 격려하며 학생들을 바라보는 훌륭한 스승은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안을 것이다.

좋은 땅이 큰 감자를 많이 안듯이….

민주주의의 근본인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그에 따르는 책임을 지는 학생들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의 여유가 있으며 수단보단 방법을 찾고 인맥보단 자신의 능력을 믿는 건강한 정신을 지닌 학생들이다. 부정을 용납하지 않고 옳지 않은 것을 정당화시키지 아니하며 아닌 것은 아니라고 일어나서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선보이는 교육자가 학생들의 교수인 학교는 당당하지만 건방지지 않고 겸손하지만 비굴하지 않은 사회 신입생들을 많이 배출해 낼 것이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원칙과 정의 그리고 예의를 교육 하는 기관이다.

학생들이 학교에 간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공부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