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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성과 독특성 그저 세상을 해석한 것 조나단 반브룩 조회수 14678

영국의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타이포그래퍼인 조나단 반브룩(Jonathan Barnbrook, 공식사이트). 그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반브룩(Barnbrook)'이라고 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데이빗 보위(David Bowie),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 애드버스터스(Adbusters) 등 유명인사들과 함께 공동 작업을 하기도 했다. 또한, 모션그래픽을 도입한 선구자 중 한 사람이며 폰트 디자이너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여 Bastard, Exocet, False Idol, Infidel 등 다양한 서체를 개발해 왔다. 서체 대부분은 감성적이지만 논란이 되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이는 그의 작품 스타일과 테마를 반영하고 있다.

기사제공│타이포그래피 서울


작품 스타일이 대담하고 독특한데요, 이것은 '모든 디자인은 인위적이다. 즉, '디자인'이라는 말은 근본적으로 인위성을 내포하고 있다.'라고 말씀하셨던 것과 관련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요?

작품을 대담하고 독특하게 만들려고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제 작품은 그저 세상을 자연스럽게 해석한 결과이지요. 제가 작품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저 자신이 홍보용 '브랜드'가 아니라는 겁니다. 제가 사용하는 시각 언어는 다른 사람들이 저를 인식하도록 만드는 도구가 아닙니다. 모든 디자인이 인위적이라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 그것은 디자인이 소통하거나 대상의 행동 경로를 보여주는 최선의 방법을 찾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분석하여 사람들에게 그 결과물(그래픽 디자인), 장소의 이동 방법(차량 디자인), 대상의 이미지 개선과 보온(유행하는 겨울 코트 디자인)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또는 '디자인 철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간단히 대답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디자인 철학을 형성하는 것은 굉장히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목표와도 관련이 있고, 주변의 영향이나 생계,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바람, 창의력 등 수천 가지의 다른 요소들이 얽혀 있습니다. 요즘 잊혀 가는 것 중 하나는 우리 디자이너들이 작품을 통해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단순히 집세를 내기 위해 돈을 벌거나 작업하려고 들지만 말고 그 전에 이점을 명심하기를 많은 후배 디자이너에게 당부하고 싶습니다.

작가님 말씀 중에 '이름이 서체가 되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 말에 따르면 이름이 먼저 나온 후 서체를 만드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제 생각이 맞나요? 또, 'Manson'이라는 서체를 만들었지만, 사용자들이 Mason체라고 이름을 바꿨잖아요. 이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요.

그렇지 않습니다. 서체를 만든 후에 이름을 붙입니다. 서체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며칠 동안 사용하면서 어떤 이름이 서체의 개념을 가장 잘 대표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Mason/Manson체는 언어의 이중성을 나타내는데요, 하나의 단어가 상반된 의미를 나타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fuck'이라는 단어는 욕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사랑을 나누는 행위를 묘사할 때도 쓰입니다. 언어와 낱말들은 모두 이런 이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Manson이라는 단어는 약간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단어의 소리가 아름답지만 사실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어요.

Mason/Manson체는 모양이 아름답지만 '좋은' 단어를 쓸 때에만 사용하는 서체는 아닙니다. 서체의 이름은 작품의 이름과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시적인 표현을 쓸 수도 있고, 그 서체의 사용자를 속일 수도 있어요. 그 이름이 서체의 용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되도록 서체 이름은 목록으로 정리해서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언어를 사랑하고 제게 영감을 주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서체는 텍스트상에서 '말을 풀어나가는 방식'이며, 여러분은 서체에서 '이야기하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름은 여러 단계의 의미를 나타내거나 혹은 사용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디자인한 서체들을 보면 굉장히 표현력이 풍부하고 특별해 보여요. 타이포그래피 작업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집니까? 개인적으로 Melancholia체의 'Q'와 'y'가 긴 꼬리를 가지고 있어서 참 좋아하는데요, 어디에서 그런 영감을 얻으셨나요?

타이포그래피 작업 방식에 일정한 형식이 없습니다. 제가 하고 싶어하는 것은 삼라만상의 다양성, 아름다움, 폭력성, 모순 등을 서체를 통해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서체는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기록이 남아 있는 겁니다. 이러한 기록들은 의미를 창출하고 특정 시대의 이념과 사상에 대해 언급합니다. 사람들이 제가 만든 서체 자체를 감상해 주기보다는 서체에 그러한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합니다. 폰트를 만들어내는 특별한 절차는 없습니다. 어디선가 툭 튀어나오는 거예요. 어떤 때에는 다른 글씨를 보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도 있고, 또 어떤 때에는 제가 추구하는 콘셉트를 바탕으로 서체를 만들기도 합니다. Melancholia체는 그냥 단어 자체가 아주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단어는 정신질환을 의미하지만, 저한테는 시적인 의미에서 이 세상에서 불행한 상태와 세상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상태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바로 이 서체의 이름을 정하려고 했을 때 서체가 저한테 했던 말입니다. 원래 이름은 '무덤(Mausoleum)'이었지만 서체 이름으로 사용하기에는 그다지 재미가 없었습니다.



최근에 발표하신 독트린(Doctrine)체는 북한의 고려항공 로고 타입을 보고 영감을 받아 디자인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이 프로젝트가 어떤 프로세스로 진행됐는지 궁금합니다.

독트린체는 가수 데이빗 보위의 'The Next Day'라는 앨범에 사용한 서체입니다. 그 앨범을 위한 새로운 서체를 만들고 싶어 했기 때문에 개발한 거였죠. 이런 상업 프로젝트는 마감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기일 내에 새 폰트가 탄생하게 됩니다. 이건 상업 프로젝트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감이 정해지지 않은 폰트들은 작업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머물러 있는 경우도 있거든요. 어쨌든 이 서체에 대한 아이디어는 몇 년 전부터 가지고 있던 겁니다. 우리는 항공사들의 공식 서체를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독재 정권하에 있는 항공사를 위주로 조사했죠. 여행의 자유를 대표하는 것이 항공사지만 실제로 일반 대중이 그것을 이용할 수 없다는 모순은 굉장히 이상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북한에 대해 관심이 있었습니다. 왜냐고요? 모든 독재자야말로 디자이너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중의 인생을 통제하고 디자인하려고 듭니다. (그리고 이는 현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에 디자인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제품을 디자인할 뿐만 아니라 역사와 미래도 디자인합니다. Doctrine체는 '유령회사 폰트'라고도 불리는데요, 거대한 파시스트 기업에서 만든 서체처럼 보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디자인 스튜디오 '반브룩(Barnbrook)'에 대해 궁금합니다. 일을 어떻게 나누어서 진행하며 작가님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스튜디오에는 저 말고 디자이너 5명이 더 있고 비즈니스를 담당하는 직원이 한 명 있습니다. 제 역할은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디자인 품질을 최고로 유지하며, 스튜디오 식구들이 모두 행복하게 지내고, 클라이언트들을 만족시키고 사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충분한 이익을 남길 수 있게 최선을 다하는 일입니다. 또한, 저 스스로에게 적합한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디자인하기도 합니다.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디자이너들은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다양한 작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스튜디오에서는 격식이라는 게 없습니다. 작업하면서 노래도 듣고, 만약에 문제가 발생하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결해 나갑니다. '반브룩 스타일'로 일하기 때문에 일에 대한 압박을 받지 않습니다. 작업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재미있어서 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할 때 저는 디자이너들에게 몇 가지 조언합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디자이너들은 궁금한 점이 있을 때마다 언제든지 저에게 찾아와서 질문합니다. 하지만 창조적인 결정은 그들의 의사를 따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제가 그들과 입장을 바꾸었을 때 직장 상사로부터 이런 대접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작품성과 수익성, 그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하세요? 그리고 자기계발 프로젝트와 외부 프로젝트는 서로 관련성이 있는지요?

외부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가끔 그 부산물로 자기계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서체는 외부 프로젝트를 하면서 만들어냅니다. 자기계발 프로젝트는 마감일이 따로 정해진 게 아니다 보니 보통 기획하고 완성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어떨 때는 특정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아이디어만 있는 상태예요. 둘 사이에 관련성이 있다면 두 가지 일 모두 최선을 다해서 이전에 나온 적이 없는 것을 창조한다는 겁니다. 물론, 자기계발 프로젝트의 콘텐츠가 보다 극적이며 비상업적이지요. 수익성에 대해서 우리가 항상 제일 처음 던지는 질문은 “재미있는 일인가?”입니다. 돈은 그다음으로 고려되는 사항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 번뿐인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저는 그 시간을 기쁘게 일할 수 있는 시간으로 채우고 싶지 그저 돈을 많이 벌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윤을 많이 남기기 위해서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광범위하고 흥미로운 작업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2007년에 런던 디자인 박물관에서 'Friendly Fire'라는 회고전, 2009년에는 'Collateral Damage' 등 런던, 파리, 도쿄, 서울에서 개인전을 여셨는데요, 예술가가 아닌 디자이너로서 작품 전시회를 열면서 느낀 소감이 있다면요? 예술가와 디자이너, 또는 예술과 디자인 사이에서 작가님의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대개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창작 활동일 따름이죠. 디자이너가 되었든 예술가가 되었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디자이너들이 더 많은 존경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들과 함께 일하다 보니 가끔 그들은 제가 하는 디자인도 해낼 수 있고, 심지어 제게 창의성이란 게 없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정말 최악이었죠. 이는 그래픽 디자인이 예술계에서 창조적인 직업이라기보다 서비스직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생각하는 디자이너의 장점은 작품이 예술계에서 '인정받는' 가치는 없다 하더라도 그것이 화랑이 아니라 사람들의 가정이나 길거리에서 실제로 사용된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예술 작품보다 훨씬 엘리트주의를 지양하고 있지요. 따라서 전시회는 '나 정말 창조적이지 않아?'라고 묻기 위함이 아니라 '이것이 바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야.'라고 알려주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인생의 멘토가 있나요? 초창기에는 어디에서 영향을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준 두 분이 계십니다. 첫 번째 분은 제가 대학교 2학년 때 만난 지도교사인 팀 포스터(Tim Foster)라는 분입니다. 그분은 저에게 작품이란 것이 꼭 상업적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대신 제 열정과 흥미를 작품에 쏟아 넣는다면 사람들은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저에게로 다가올 것이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이 옳았습니다. 또 다른 한 분은 음악가 존 폭스(John Foxx)라는 분입니다. 그분의 음악과 이미지 메이킹 방법을 접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분의 콜라주 작품은 제 초창기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현재까지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분의 앨범 커버를 디자인할 수 있게 되어서 행복합니다. 이건 제가 인생에서 느끼는 가장 큰 기쁨 중 하나입니다. 그분의 음악은 제 인생의 사운드트랙입니다.

끝으로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한국에서는 영국에서보다 디자인이 훨씬 더 상업적인 영역에 가깝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디자이너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겁니다. 제가 아는 많은 분은 오랜 시간 동안 잔업수당도 받지 않고 정말 열심히 일하고 계신다는 걸 압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가끔 모험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만약 그것이 일을 그만두는 것이라면 그렇게 해 보십시오. 그럴 수 없다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여가 동안 짬을 내어 해 보십시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나중에 나이가 들어 후회하게 될 겁니다. 디자이너가 된다는 것은 불행하다고 느끼면서 돈을 버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디자이너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거기에 자기 생각을 함께 담아낼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