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 한복판에서 벌들이 건강하게 날기를 꿈꾸는 남자. 아프리카에 깨끗한 화장실을 지어 아이들이 오염되지 않은 물을 먹기를 바라는 디자이너. 혼자 독식하기보다 이제 막 길을 찾기 시작한 젊은 친구들과 기꺼이 어깨를 나란히 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선배.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지구 반대편의 어떤 장소를 가슴속에 품고 사는 스튜디오 공백 대표 백종원을 만났다.
기사제공│타이포그래피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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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들과 공백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계시는데 어떠세요? 재미있어요. 제가 가르쳤던 제자들이기도 하고, 가능성이 많은 친구들이에요. 젊은 친구들은 나도 언젠가 누군가 알아주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로망이 있어요. 과정을 생각하지 않고 결과만 보는 거죠. 학생들을 보면서 그런 게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현실성 있는 일을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으면 좋겠다 싶었죠. 캠페인이나 레드닷을 위주로 작업하다 보면 공부를 더 해야겠다든가, 이 일을 좀 더 해봐야겠다든가, 하는 길을 또 찾거든요. 같이 하면서 저도 배우는 게 많았고요.
개성이 다들 다를 텐데 어떻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으셨나요? 함께 모여서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각자 갖고 있는 아이덴티티가 많이 다르고 하고 싶은 일도 다르니 같은 일을 하면서 구심점을 만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았거든요. 그러다 마침 지하철 막말 사건이 나왔을 때, 막말 스티커를 만들어봤어요. 사회성을 가지고 정치적 발언을 하거나 대단한 일을 하자는 게 아니고 디자이너로서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일이라고 권유를 했죠. 다행히 지하철 5호선에서 할 수 있어서 진행하게 됐죠.
본인의 일을 따로 하시면서 제자들과도 함께 하시면 에너지가 많이 들 텐데요. 동시에 할 일이 몰리면 힘이 들 때도 있는데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고, 실행력을 보이는 점이 참 뿌듯하고 좋아요. 단순히 꿈으로 여기면서 도전하지 못하면 등을 밀어줄 때도 있고, 제가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을 때 나누던 대화에서 우연히 길을 찾기도 하고,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같이 하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아이디어는 어떻게 찾게 되세요? 생활에서 찾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하루는 한 친구가 쪼리 끈이 떨어져서 온 거에요.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래도 여기에서 끊어지면 어떻게라도 해보겠는데 산에 가서 이러면 정말 난감하지 않느냐, 그럼 산에서는 어떻게 하면 될까,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출발하게 되어 여행자 키트를 만들게 되었죠. 직접 산에도 가보고, 나침반부터 종이컵까지 종이로 해볼 수 있는 건 다양하게 해봤어요. 레드닷에서 상도 받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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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디자이너다. 일상의 영역에서 현실의 일을 해내 가면서도 '디자이너는 누구인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한다. 내 밥벌이의 소중함을 인식하면서 성실하게 일을 하지만, 우리 모두가 무엇을 해야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지도 그에겐 중요한 문제다.
생활 속에서 보고 듣는 것이 모두 아이디어로 발전 가능성이 있는 건가요? 무조건 생각을 그렇게 하려고 해요. 이게 보이면 이걸 가지고 생각해보자 하던가. 그러다 생각이 안 나면 접으면 되니까(웃음). 아이디어가 나오면 생각으로 발전시켜서 해결책을 찾아가는 편인데 해결을 못 하는 경우도 많아요. 마인드맵으로 발전시켜보기도 하고, 대화도 많이 나누고, 한 가지 사물을 보면서도 다른 생각으로 발전시키려고 하죠.
최근에 고민하고 있는 문제는 어떤 건가요? 아프리카의 화장실 문제에요. 애들이 깨끗한 물을 못 먹는 이유 중 하나가 상수도도 없고 아무 데나 용변을 보니까 깨끗한 물이 지켜질 수 없다는 것이거든요. 사람 변이 썩으면 그냥 거름이 되느냐, 그것도 아니거든요. 현재 빌 게이츠도 아프리카 아이들 화장실 문제를 두고 기발한 화장실을 개발한 사람에게 상금을 주겠다, 라고 할 만큼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데 우리 입장은 엄청난 기술이 아니라 디자인으로 계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것이었죠. 그걸 지금 고민하고 있어요.
눈앞에 있는 작업보다 더 큰 시각으로 세상을 보시는 것 같아요. 그 계기 중 하나가 저는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을 한 데서 오는 것 같아요. 대학에 갔더니 친구들은 예쁘게 그리고 만드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더라고요. 그게 별로 좋아 보이지 않으면서도 제가 모자라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재능이 부족한가 싶기도 하고. 그런데 사회에 나와서 공부를 하고 시선을 돌리다 보니 사람들이 나의 다른 시선에 대해 다른 판단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아, 내 판단 기준이 다른 점이 장점이 될 수 있겠다고 자신감을 얻었어요.
다른 시각을 계속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 것 같은데요.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면서 수업 준비를 통해 진짜 공부를 많이 하게 된 것도 계기였어요. 평생 안 보던 다큐멘터리를 다 보고(웃음). 제게도 스승님의 상이 있었지만, 적어도 공부 안 하는 선생이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어요. 최근에 꿀벌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잖아요. 환경적으로 문제인 건데, 도시에 꿀벌들이 날아올 수 있도록 꿀벌 집을 만들면 어떨까, 꿀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벌들을 살리기 위해서, 생태계를 지키는 뜻깊은 일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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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의 디자인은 알게 모르게 사람들 의식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 시각적으로 많이 노출될수록 자동으로 인지되고 고정관념으로 굳어지는 경우도 있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실제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생각과 다르기도 하다. 그는 디자인 정책에도 관심이 많다.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을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그의 가장 큰 강점이다.
가치와 현실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으세요? 기존에 하던 사업적인 일에서 돈을 벌고, 학생들하고 같이 하는 일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봐요. 하나의 작은 아이디어가 굉장히 편리함을 줄 수 있는 디자인으로 나올 수도 있거든요. 안전행정부에서 금속분과 위원장을 맡아서 일한 적이 있어요. 좋은 기획이 있었는데 실제 일하는 과정에서 답답한 면을 많이 봤어요. 제가 추구하는 것을 다 실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중요한 건 놓치지 않으려고 하죠.
수업 중에 학생들에겐 어떤 점을 강조하시나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창의에요. 사물을 하나 보더라도 하나의 시각이 있으면 그것과 정반대의 입장에서 보라고 하고. 예를 들면 바로 보는 경우가 있으면 거꾸로 보라던가. 사진을 찍어오라는 과제를 꼭 내는데 나만이 볼 수 있는 시각을 포함하라고 하죠. 무릎을 굽혀서 시선을 낮추든, 빈 틈새 공간을 찾아내든, 자기 그림자를 보든 뭐라도 좋으니 기존의 자기 시각과는 다르게 보는 연습을 하라고 해요.
창의성을 키울 방법엔 어떤 게 있을까요? 방법은 여러 가지인 것 같아요. 한계를 설정해보는 것도 좋고요. 종이로 구조물을 만드는데 접착제는 절대 쓰지 않는다든가, 사진을 찍을 때도 집에서 학교에서 오는 길을 스토리로 만드는데 평소 가던 루트는 사용하지 않는다든가. 물건의 크기를 가늠해오는 데 신체를 사용해서 감을 키운다든가, 평소 이런 연습들이 도움되는 것 같아요. 벽에 부딪혔을 때 한계를 넘어보는 경험도 중요한 것 같고요.
지금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건 어떤 건가요? 가구에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아주 작은 디자인만으로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달라진다든가 실용적이 되는 측면이 많거든요. 도서관 작업을 했던 게 큰 경험이 되기도 했고요. 생각도 정리되고 있는데 금속으로 된 가구를 해보고 싶어요. 학생들을 도울 수 있는 일도 꾸준히 하고 싶고. 생각은 참 많아요(웃음). 그래서 더 비우려고 해요. 비워야 채우니까. 공백이라는 이름도 비움을 생각하며 지은 이름이거든요. 어쨌든 누군가와 같이 꿈꾸는 세상에 관심이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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