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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강렬함, 디자이너 이용규 크리에이터 조회수 13457

10년 동안 스튜디오(디자인 콥스, 홈페이지)를 운영하다가 최근 직장으로 돌아갔다. 일을 하면서도 개인 작업을 놓치지 않고 꾸준히 해서 좋은 평가도 받았다. 밀도 높은 팝아트 같은 그의 작업은 한 번 보면 잊지 못할 정도로 강렬하다. 디자이너 이용규를 만났다. 

기사제공 ㅣ 타이포그래피 서울 (글: 인현진)


편집 베이스로 일하다가 아트웍으로 전향하신 거로 알고 있는데 계기가 있으셨나요?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개인의 주관보다는 클라이언트의 개입이 많다 보니 어느 순간 회의가 들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곤 사토시 감독의 일본 애니메이션을 봤는데 새로웠어요.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을 시작했는데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죠. 스타일이나 컬러를 조금씩 개선해나가다가 서울 디자인 페스티벌에 나가게 됐는데 그때부터 새로운 길을 찾게 된 것 같아요. 표현 기법도 달라지고 얼굴 하나를 묘사하더라도 데생하듯이 면을 하나씩 쪼개보기도 하고. 작업도 재미있고 다 좋은데 다만, 시간이 너무 걸려요(웃음).

지금까지 해 오신 작업을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싶으신지요?
지금 작업에서 더 단순화시키고 싶어요. 보기 쉽고 알고 싶게. 다양하게 실험하고 있어요. 컬러를 일부러 뺏던 자리에 다시 컬러를 넣어보기도 하고. 오랫동안 컴퓨터로 작업을 해왔는데 요즘은 손맛이 많이 나는 느낌이 좋더라고요. 앞으로는 밀도를 높이기 위해 수작업으로도 하고 싶어요. 큰 작품에 대한 욕심이 나서 사이즈도 키우고 싶고요. 궁극적으로는 복제가 불가능한 원 컷밖에 없는 작품을 하고 싶죠.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공을 더 들여서 작업하고 싶어요.

좋은 작업을 꾸준히 하려면 어떤 게 필요할까요?
좋은 것을 뽑아내는 능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세상에 유일한 것은 없고 어디선가 본 것들인데 우리 안엔 그 잔재가 조금이라도 존재하죠. 거기에 어떻게 자신의 것을 담아서 명확하게 보여주느냐가 관건인 것 같아요. 무식할 정도로 많이 보는 수밖에 없어요. 나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리서치를 수없이 하다 보면 비슷한 게 나와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이 무의식 속에 있었을 수도 있지만 선별할 수 있는 능력과 안목은 정말 많은 경험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하세요?
일단 주제를 어렵게 잡지 않아요. 심오하고 철학적인 내용은 다 들어내고 쉬운 것을 찾아요. 예를 들면 술을 좋아하다 보니 술을 먹고 나면 울렁거리는 느낌을 표현해본다든가. 어? 다시 생각해보니 쉽지 않은 것도 같고(웃음). 표현할 때 단순화시키고 알기 쉽게 하려는 의도가 생겨요. 최근에 마크 로스코 그림을 보러 갔는데 형태 자체는 단순한데 정말 강렬한 감정을 받았거든요. 단순하지만 밀도 있는 작업을 하고 싶고, 밀도는 수작업을 통해서 만들어내고 싶어요. 오브제도 만들고 싶고요.

인터뷰를 하는 동안 1분을 넘기지 못하고 웃음이 터졌다. 그는 작품을 대하는 태도는 진지하지만 삶을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으려고 한다. 즐거운 일을 많이 찾고 유쾌하게 작업을 한다. 작업에 투입되는 노동의 강도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겠지만, 그것을 굳이 겉으로 드러내진 않는다.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디자이너다. 

작업 중에 기억나는 일이 있으세요?
작년에 마지막으로 코엑스에서 전시할 때인데 어느 분이 다가오셔서 말을 걸더라고요. 매년 오셨나 봐요. 내년에도 하느냐고, 그래서 내년에는 안 합니다, 하니까 안타까워하시더라고요. 그게 너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어요. 누군가 내 작품을 눈여겨 보고 기억해준다는 게. 제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분이 오셔서 말씀해주시면 감동적이죠. 그런 분들을 생각하면 개인 작업도 해야 하겠구나 싶어요.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전시는 반드시 할 거예요.

작업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포인트가 있다면요?
명확함과 메시지에요. 어떤 면에선 지금까지 제가 보여주었던 것과는 거리가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보기 쉽고 편했으면 좋겠어요. 이 작품의 의미가 뭐냐고 많이 물어보시는데 답변하기가 너무 어려워요(웃음). 작품에 대해 써놓아도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어떻게 했느냐, 방법이 뭐냐, 이런 것도 많이 물어보시는데 보면 알잖아요, 이렇게 되면 좋겠어요. 단순한 게 좋아요.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으세요?
제 아이디어의 원천은 텔레비전이에요. 정말로 텔레비전을 너무 좋아해요. 어디 안 가도 트렌드를 알 수 있고 심지어는 과거가 어땠는지도 알 수 있잖아요. 특별히 정해놓고 보는 건 없는데 요즘은 요리 프로그램을 주로 봐요. 하지만 무엇을 봐도 사람이 등장하잖아요. 그들이 입은 옷, 나누는 대화, 풍기는 분위기 이런 것들을 보는 게 흥미로워요. 광고도 재미있고요. 텔레비전 속에 모든 게 다 들어 있어요. 아내는 엄청 싫어하지만(웃음).

일하다 보면 힘든 시기도 있고 스트레스도 쌓일 텐데 어떻게 보내세요?
갈등도 많았죠. 그런데 힘들 땐 꼭 누군가 도와주더라고요.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엉뚱할지도 모르지만, 최근엔 농부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내 지인 중에 밭을 갖고 있는 분이 있어서 텃밭을 조금 주셨어요. 거기에 상추, 셀러리, 토마토 등 이것저것 심었는데, 진짜 좋아요. 주말에 애들이랑 같이 가서 물도 주고. 요즘 비가 안 와서 걱정이에요. 캠핑도 좋아해요. 재미 붙인 지는 2년 정도밖에 안 됐는데 처음엔 짐 나르고 정리하는 게 귀찮아서 이걸 뭐 하러 해, 하다가 해보니까 진짜 재미있어요.

디자이너는 이미지를 언어로 쓰는 사람들이다. 막연한 생각을 명확한 이미지로 표현해 소통을 이끌어낸다.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생각들을 포착해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일은, 형태가 없는 것에 질감과 색채를 부여해 형태를 부여하는 일이기에 경이롭기조차 하다. 

작업하다가 막히면 어떻게 하세요?
작업할 때 막히면 일단 첫 번째는 텔레비전을 보고요(웃음). 서점에 자주 가요. 저는 주로 제목을 많이 봐요. 꽂혀 있는 책들을 굳이 꺼내보기보다 펼쳐져 있는 책들의 비주얼을 보죠. 서점 안의 진열된 책들의 제목만 읽어도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작업이 풀린 경우가 많아요. 작업 중에 중간 과정은 절대 보여주지 않아요. 그리고 해외 사이트에 먼저 올려요. 저를 전혀 모르는 분들이 피드백을 막 달아주시는데 알 수 없는 언어로 달릴 때도 있거든요. 하여튼 좋은 말이겠거니(웃음). 모두 다 관심의 표현이잖아요. 거기서 다시 힘을 얻기도 해요.

작품에서 나만의 개성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거 어려운데요…. 쉽게 말을 못하는 거 보니까 그걸 찾는 게 과제인 것 같아요. 너만의 강점이 뭐야, 개성이 뭐야, 라고 물어도 스스럼없이 대답할 만한 게 없어요. 지금 갖고 있는 게 아니라 갖고 싶은 것은 밀도라고나 할까? 꽉 차 보이는 점? 과일도 단단해 보이면서 유난히 맛있어 보이는 게 있잖아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밀도와 밸런스예요. 밀도는 자기 노력의 흔적이기도 하고 밸런스는 치우치지 않는다는 건데, 솔직히 제게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은 없어요. 앞으로 제가 지향하고 싶은 점이죠.

밀도와 밸런스가 중요한 가치라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계속해서 단순화하는 작업을 하고 싶은데 단순화시키기만 하면 가벼워 보일 위험이 있어요. 가벼움을 많이 업그레이드시키고 상쇄시켜서 무거워 보이게 하려면 노력의 흔적이 보여야 하죠. 그래서 수작업을 하고 싶은 거고요. 로스코도 그렇지만 공을 들여 작업한 분들의 현장에 가서 느껴지는 무게감은 뭐라 말할 수가 없거든요. 밸런스는, 편집으로 예를 들면 텍스트와 공간, 이미지의 조화라고나 할까요. 어떤 이미지이든 한쪽으로 기울면 보기 불편하잖아요. 불편함을 일부러 추구하지 않는 이상 보기에 불편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하고 싶은 말씀 한마디 있으면 해주세요.
실력 있는 젊은 친구들이 많은데 기회가 없어서 조명을 못 받는 것 같아요. 깜짝 놀랄 정도로 잘하는데 알려지지 않은 분들이 정말 많거든요. 그런 분들을 발굴해서 알려주면 좋겠어요. 디자인 간행물은 항상 사서 보는 편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잘 안 봐요. 같은 분들이 또 나오고, 또 나오고 하니까 좀 그렇더라고요. 물론 최고의 실력을 갖춘 분들이지만 새로운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죠. 앞으로 윤디자인연구소와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