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사이트에서 ‘모임 별’이라는 검색어를 치면 ‘가수’라고 나온다. 정규 앨범도 있고 팬층도 꽤 두터운 듯한데, 공식사이트에 가면 디자인 작업물로 채워져 있으니 궁금증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음악과 그래픽 디자인뿐만 아니라 브랜딩, 영상, 프로그램 개발까지 하는 일도 다양하다. 우연한 ‘술 모임’에서 시작됐다는, 조금은 엉뚱한 시작을 했던 ‘모임 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사제공 | 타이포그래피 서울
모임 별에 대한 소개를 해주세요. 각자 다른 삶의 양식과 목표를 가지고 살아온 친구들의 우연한 술 모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반복되기만 하던 술자리에 의미를 더하고, 무엇보다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알기 위해 유치하나마 장기자랑 시간을 갖게 되었지요. 누구도 우리가 만든 것들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니, 친구들끼리라도 서로 보여주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시를 읊거나, 기타를 들고 와 연주를 하고, 그린 그림과 만든 옷을 순서대로 선보이는 식이었습니다. 그 자리의 작은 즐거움에 함께했던 사람 중 몇몇이 이것들을 하나로 합친 무언가를 해보자며 모임에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모임 별’이라는 이름으로 음악과 영상 등을 활용한 공연을 시작하게 되었고, 음악과 함께 주위 가까운 친구들의 삶을 기록하여 종합적으로 담아낼 비정기간행물 ‘월간뱀파이어’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자체 작업들 외 의뢰받은 프로젝트들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어느새 15년 정도가 흘렀고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있지만, 저희는 기본적으로 여전히 친한 친구들의 '술 모임’이자 함께 음악을 만들며 일상을 기록하는 ‘밴드’입니다. 조태상, 허유, 조월, 이윤이, 이선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임 별이 서비스하는 분야가 굉장히 다양해요. 기본 베이스인 음악부터 그래픽, 브랜딩, 심지어 소프트웨어 개발까지요.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나요? 처음 밴드로 시작했을 때엔 술집이 아닌 정식 클럽에서 공연 한 번만 해보았으면, 유치해도 좋으니 직접 실제 인쇄된 잡지를 한번 만들어 봤으면, 음반을 하나라도 발매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활동이 이어지다 보니 음반사나 출판사들에서 각종 발매/발간 제안을 해왔는데 저희가 생각하던 방향들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래서 투박하게나마 직접 디자인과 인쇄를 하고 홈레코딩으로 이것저것 만들어서 팔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시기 멤버인 조태상이 아트선제센터에 디자이너로 취직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의 산출물을 지켜본 외부 클라이언트들이 디자인 의뢰를 하기 시작했고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레 작으나마 디자인 스튜디오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그래픽-편집디자인 등 의뢰로 만나게 된 클라이언트들 중 일부의 요청에 따라 웹과 영상 등을 만들거나 브랜드 전략, 패션쇼 연출, 실내외 건축 디자인 등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5~6년여 사이에 스튜디오의 성격과 중심축이 과거 그래픽 디자인 등에서 브랜딩/아트디렉션 쪽으로 확연히 이동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되는 과정도 이전과 비슷했습니다. MUG FOR RABBIT 브랜딩, 2008-, 클라이언트: Cafe Grande ATLIER HERMES 그래픽 시스템 + 전시디자인, 2006-2013, 클라이언트: HERMES
ALLEGRI 브랜딩, 2014, 클라이언트: LG패션
일민미술관 아이덴티티, 2014, 클라이언트: 일민미술관 + 일민문화재단 BIKE REPAIR SHOP 브랜딩, 2012, 클라이언트: 제일모직 하나의 목소리를 내려면 분야별로 협업도 굉장히 중요할 것 같아요. 프로젝트를 할 때 모임 별만의 특별한 프로세스가 있나요? ‘모임 별’은 기본적으로 직제나 작업 흐름이 확립된 조직이라기보다, 상황별로 복합적인 요구 조건에 따라 내외부 인원들로 매번 새로운 팀을 구성해 함께 작업하는 일종의 ‘오픈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저희가 이와 같은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유지하고 운용한다기보다는, 적은 수의 멤버로 변화무쌍한 클라이언트, 과제들의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한 궁여지책이라 말씀드리는 편이 솔직할 듯싶습니다. 한 명의 디렉터가 다양한 모든 업무를 총괄하나요? 아니면 분야별 디렉터가 따로 있나요? 명확한 역할 분담이 있다고 할 순 없으나 일단 밴드로서 작곡/편곡/녹음 등은 조태상과 조월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공연/디제잉/파티 등의 기획은 이선주를 비롯해 다양한 비구성원들도 함께 진행하고 있고요. 웹/앱/인터랙티브/소프트웨어 개발과 같은 프로젝트들은 주로 조월 중심으로 진행하는 편이며, 그에 더해 음악/브랜딩/디자인/영상/설계 등까지 통합한 전체 작업의 업무 배분/조율/진행 등은 조태상이 주로 맡고 있습니다.
서울서울서울 음반 아트디렉션, 2012, 클라이언트: Beat Ball + Cavare Sound + Electric Muse JAIN SONG, 브랜딩, 2008-, 클라이언트: JS & Associate SHINSEGAE LIVING ART FAIR 아이덴티티 디자인 + 인테리어 설계/시공, 2015, 클라이언트: 신세계
클라이언트 작업과 음악 포함 자체 프로젝트를 병행하고 계시는데, 어떤 원칙 같은 것이 있나요? 일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자체 프로젝트를 소홀히 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서요. 딱히 원칙 같은 것은 없지만, 자체/클라이언트 프로젝트의 구분 없이 마음과 몸 상해가며 해야 하는 작업은 유무형의 보상이 어떻든 가능한 한 맡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적절한 일정 조율과 욕망 조정도 필요한 듯싶고요. 젊은 시절과 달리 음주가무를 비롯한 각종 쾌락도 순간적으로 너무 과하지 않게 꾸준히 성실한 자세와 마음으로 즐겨야 개인은 물론 팀도 오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체 브랜드 KidKit에 대한 소개도 해주세요. 어떤 관심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인가요?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을 보다 집중적으로 진행키 위해 만든 모임 별 내 별도의 유닛이자 브랜드입니다. 현재 IOS용 앱인 ShapeKit을 공개한 상태이고, 향후 다양한 플랫폼, 장르, 전문성, 연령층을 포괄하는 소프트웨어들을 꾸준히 선보일 예정입니다. ShapeKit 소프트웨어 개발, 2015, 클라이언트: 자체 프로젝트
최근 몰두하고 있는 작업이나 디자인적 이슈가 있다면요? 근래 규모를 떠나 감각 좋은 해외 에이전시들의 국내 활동이 늘고 있다 보니 전에 비해 디자인계의 흐름을 조금은 더 살펴보게 됩니다. 그와 같은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기존의 가까운 동료들은 물론 새로이 함께 작업, 신뢰할만한 외부 스튜디오 및 전문가들과의 접점을 더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와 가능성을 동시에 느끼고 있습니다. 전에 비해 팀워크를 수행할 의지와 독특한 색깔을 지닌 개인/소규모 스튜디오들이 많이 생겼고, 경쟁을 넘어선 네트워크 및 신뢰가 꾸준히 축적된 점은 저희가 처음 만들어졌던 2000년대 초중반은 물론 6~7년 전과도 사뭇 다른 환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음악과 관련하여 진행 중인 작업으로는 과거의 데모곡들을 모아 4월쯤 뮌헨의 레이블에서 발매할 ‘Selected Tracks for Nacht Damonen(밤도깨비들을 위한 선곡집)’이란 제목의 음반, 3월 중 발매할 EP '나리 유코 진' 그리고 늦여름쯤 발매를 계획 중인 새 정규음반이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었다면요? 2004 광주비엔날레의 전시 도록과 뉴스레터 디자인을 담당했었습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고, 여러 측면에서 부끄러우나마 고백하자면 저희가 비전공자들이었던지라 일을 하는 과정을 통해 그래픽 디자인을 배우는 시기였습니다. 당시 미술평론가 이정우(임근준) 씨가 한 매체에 비엔날레에 대한 후기를 쓰며 도록 디자인에 대한 평도 남겼는데, ‘모임 별의 디자인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기본이 결여 되어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괴로웠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지적이었고, 저희가 다소 무신경 또는 무책임하게 일을 맡아 진행해왔다는 깊은 반성과 함께 이런저런 공부와 변화의 틀을 짜기 시작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후에도 여전히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가까스로 ‘기본’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은데…. 이젠 국외는 물론 국내에도 워낙 멋지고 좋은 디자이너, 디자인 스튜디오들이 넘쳐나는지라 새삼 막막하고 아득해지는 기분입니다.
음악과 다른 일을 병행하기 위해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많았을 것 같아요. 어떠셨어요? 초반 몇 년 이후 그런 고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외부에서 의뢰받은 일이나 음악을 포함한 자체 작업이 딱히 분리된 무엇들로 인식되지 않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본업인 음악과 상대적으로 생업이라 할 수 있는 디자인 작업들, 이런저런 교우관계, 사회생활, 개인 일상 등이 모두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듯 하나의 천으로 짜여 버린 지 오래다 보니….
클라이언트가 업무를 의뢰할 때, ‘음악가’라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하거나 반대로 단점이 될 때가 있는지요.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현재 저희에게 작업을 의뢰하는 신규 클라이언트들 대부분은 저희 본업이 ‘밴드’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저희도 작업 진행에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는 이상 굳이 알릴 이유가 없고요. 최근 한 록 페스티벌의 아트디렉션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클라이언트 측 책임자가 ‘모임 별이 공연과 음반 활동을 하는 음악가이기도 한 점이 선정에 영향을 끼쳤다’고 말해 신기했습니다. 매우 특수한 경우입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이덴티티 + 사인물디자인, 2015, 클라이언트: 문화체육관광부 + 아시아문화개발원
베니스 비엔날레 2013 한국관 웹사이트, 2013, 클라이언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신문박물관 미디어월 기획/설계/프로그래밍, 2012, 클라이언트: 동아일보
현대백화점 2015년 봄 홍보 이미지 제작, 2015, 클라이언트: 현대백화점
디자인 작업을 할 때 폰트 또는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어떤 생각, 어떤 고민을 하는지도 궁금해요. 오랜 기간 고민해온 문제입니다. 지속적으로 관심을 쏟으며 공부, 탐구를 하고 있지만 언제나 참 어렵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 내에 조악한 수준이나마 직접 개발한 서체들을 공개하기 위한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 이번 타이포그래피 서울과의 만남이 향후 서체 개발 작업 하시는 분들과의 폭 넓은 교류 및 배움 계기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모임 별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꾸준히 지금처럼 음악을 만들고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결과물을 저희들은 물론 주위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도 함께 즐길 수 있다면 더욱 기쁘겠지요. 디자인 스튜디오로서는 여러 환경과 여건을 생각할 때 일단 최소한의 틀을 유지하며 버티는 것조차 만만치 않은 과제로 느끼고 있습니다. 5년 후에도 지금처럼 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여러모로 마음이 급하고 갑갑하시겠지만…. 그럴수록 가까운 친구들을 조금 더 믿고 서로 도와가며 함께 작업해 보세요. 쉽지 않지만 기대보다 그럴듯한게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멋지고 좋은 작업, 활동들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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