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나의 텍스트가 또 다른 텍스트로 이어지듯 하나의 말은 또 다른 말로 이어지고 새로운 질문과 대답을 낳았다. 스튜디오 TEXT(홈페이지)는 스승과 제자로 만났으되 권위가 느껴지지 않는 사이. 존중하되 두려워하지 않고, 좋아하되 예의를 갖춰야 하는 선을 넘지 않는 관계가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서로에 대한 신뢰를 만들었다.
스튜디오 이름이 TEXT인데 그래서 텍스트에 관련된 일을 하실 거라는 착각이 들어요(웃음). 편집물 관련 프로젝트가 많다 보니 텍스트를 많이 다루는 건 사실입니다(웃음). 하지만 저희가 글을 쓰고 윤문하고 교정하는 일을 하는 건 아닙니다. 물론 이름, 카피 등 디자인과 관련된 브랜딩의 부분에서 고민도 합니다만, 저희가 작업의 대상으로서 주어진 텍스트를 다루는 건 다른 디자인 스튜디오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굳이 TEXT라는 스튜디오 이름과 관련지어서 생각해본다면 프로젝트에 접근할 때 좀 더 문제를 규정하고 거기서 콘셉트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의미의 단위로서 단어들을 많이 활용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학교에서 <디자인과 글쓰기>라는 수업을 진행하는데, 이 수업은 흔히 생각하는 '글'을 다룬다기보다는 하나의 의미 체계로서 '단어'와 그것이 확장된 개념에서의 '글'을 다루는 수업이에요. 글을 써가는 과정과 디자인을 수행하는 과정은 결국 표현하는 양식이 다를 뿐이지 생각을 다듬어나간다는 전제는 동일하기 때문에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디자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대학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왔는데, 이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식이나 기술보다 태도가 좀 더 중요해지는 시기인 것 같아요. 지식과 기술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종래의 교육이 기술, 지식의 습득을 통해서 세계의 이해에 초점을 맞춰왔다면 앞으로는 문제의 가치를 논의하고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좀 더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지만 앞으로 고민이 더 많아지겠네요. 사회적 이슈에 대해 성찰하게 될수록 좀 예민해지는 것 같아요. 어릴 땐 디자인 내적인 부분에 대해 고민만 했는데, 지금은 다양한 클라이언트를 만나고, 작업의 종류도 많아지니까 구조를 생각하게 되고, 어느 순간 의식이 생기면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고민도 많아지더라고요. 게다가 생각이 많은 예민한 사람하고 있으면 예민한 포인트를 더 건드리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없던 예민함도 깨어나고(웃음). The FAR Game, Korean Pavilion 2016, la Biennale di Venezia, 미디어: 전시 디자인, 클라이언트: the pavilion of the republic of Korea, 2016
텍스트. 단어 하나로 간단하게 표현되지만 어마어마한 말이다. 보고 듣는 것 무엇이든 텍스트가 된다.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확장하는 것은 수용자의 몫이겠지만 텍스트를 새롭게 보게 하는 안목은 디자이너에게 기대는 바가 크다. 늘 읽던 책도 늘 보던 하늘도 디자인이라는 필터를 거치면 낯선 무엇이 되어 인식의 확장을 불러온다. 일상의 습관을 깨는 즐거움이다. 국립극단 일도 오래 하셨죠. 포스터마다 인상이 굉장히 강렬했어요. 2010년 국립극단이 재단법인으로 독립하면서 새로운 로고가 필요했어요. 그때 손진책 예술 감독님을 처음 만났고 그 이후에 아이덴티티부터 포스터까지 같이 진행해왔습니다. 고집도 상당히 강하셨지만 또 한편에서 디자이너의 판단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신뢰해주셨던 부분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건물을 붉은색으로 칠한 것도 사실 쉽지 않은 결정인데 밀어붙이셨고 <오이디푸스>의 포스터도 기존의 연극 포스터와는 매우 다르게 느끼셨을 수도 있는데 좋아해 주셨어요. 국립극단의 아이덴티티나 포스터 모두 연극이 가져야 할 '다름'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 이어진 것이에요. <오이디푸스>나 <3월의 눈> 그리고 <봄마당 씨리즈>, <맥베스>, <샤일록>, <안티고네>에 이르기까지 작업은 '대사'와 '인물'을 연극적으로 가져오기 위한 고민이 많았고, <풍선>, <레슬링>, <챔피온>,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 같은 작업에서는 '무대'를 가져오려는 시도를 했었어요. <리처드2세>는 '공간감'을 드러내려고 했던 시즌 2기의 작업이긴 한데, 그 당시 어떤 사정으로 인해서 사용할 수 있는 이미지가 그거 한 장이었어요. 인물을 부각시킬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고 거기에 이진우 디자이너가 굉장히 강한 타이포그래피를 얹혀서 만들어진 작업이에요. 제한된 상황이 되레 좋은 작업을 하도록 만들어준 흔치 않은 예이죠(웃음). 국립현대미술관하고 했던 작업 이야기 좀 해주세요. 비디오 빈티지부터 국립현대미술관하고 과천에 있을 때부터 같이 작업을 했어요. 이때부터 일 년에 두어 개의 프로젝트를 같이 하고 있는데 사전 협의나 의견을 나누는 과정이 정말 좋고 인쇄 매체만이 아니라 공간 안에서의 그래픽 역할에 대해서도 같이 고민할 수 있어서 많이 배웠어요. 2015 올해의 작가상을 작업할 때도 기존의 로고를 새롭게 해석하면서 입체적인 효과를 넣어봤었는데 그게 인쇄 매체나 웹 등에 머무르지 않고 최유진 디자이너에 의해서 공간 안에서 실제 입체와 큰 스케일로 구현된 것을 봤을 때 인상 깊었던 작업이었지요. 뭔가 작업을 하면서 서로 더 해보라고 부추긴다고나 할까요. 그런 욕심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케이스라고 봅니다. 베니스 비엔날레 작업은 어떠셨어요?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가 용적률이라고 해서 집을 지을 때 허용되는 면적의 규제 안에서 건축가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를 다룬 전시라서 사실 좀 딱딱한 면이 많았어요. 전시 아이덴티티를 먼저 시작했는데 이야기가 좀 어렵다고 생각하다 보니 좀 더 직관적인, 이해가 쉬운 아이덴티티 시스템을 요구했어요. 그래서 집의 형태를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도록 탱그램의 형태를 이용해서 풀었어요. 원래는 아이덴티티에서 끝날 수 있었던 일이었는데, 전시장의 전체 그래픽적인 접근까지 이루어질 수 있어서 매우 괴롭고 동시에 즐거웠어요. 전시장에서는 정보를 맵핑해서 보여주는 지점들이 많았는데 그게 쉽지 않은 일이라 큐레이터와 몇 번이고 수정 작업을 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죠. 하지만 그런 디테일한 요소들이 전체 전시장 안에서 조화롭게 맞아 들어가고 전시장의 경험을 디자인을 통해서 맥락화시키고 연결할 수 있었던 작업이란 점이 좋았어요.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 작업도 그런 공간 그래픽적인 개념의 작업이죠? 저희가 맡았던 일은 아시아 문화전당 내에 있는 정보원의 사인 그래픽과 전시 내용을 맵핑으로 다듬는 일이었는데, 이 공간은 일종의 도서관이면서 전시공간이고 연구 과정을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한, 좀 복잡한 개념의 도서관이라고 보면 됩니다. 다양한 정보들이 넓은 공간에 혼재되어있다 보니 사인을 통해서 동선을 제안하고 또 자기가 찾는 정보를 잘 따라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잘할 수 있어야 했는데, '책'의 페이지 개념을 각 인포메이션에 도입을 해서 페이지를 따라서 전시를 읽어나간다고 생각하고 작업을 진행했어요. 연구 결과들과 같이 가는 전시회여서 연표 작업부터 정보 그래픽적인 형태로 다시 만들었지요. 멋있는 포스터나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보는 것도 즐겁지만, 공간 안에서 작업은 그것과 달리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작은 요소들이 서로 연계성을 가지고 조화롭게 배치될 때, 그런 지점에서 느끼는 쾌감도 있고요. 공간 작업은 앞으로도 더 해보고 싶은 일입니다. [좌] <리차드 2세(Richard 2nd)>, 미디어: 공연아이덴티티, 클라이언트: 국립극단, 2014 [우] <맥베스(Macbeth)>, 미디어: 공연 아이덴티티, 클라이언트: 국립극단, 2014 [좌]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living president Lee Joong Saeng)>, 미디어: 공연아이덴티티, 클라이언트: 국립극단, 2014 [우] <노래하는 샤일록(Shylock)>, 미디어: 공연 아이덴티티, 클라이언트: 국립극단, 2014 <안티고네(Antigone)>, 미디어: 공연 아이덴티티, 클라이언트: 국립극단, 2013 [좌] <풍선(Balloon)>, 미디어: 공연아이덴티티, 클라이언트: 국립극단, 2012 [우] <오이디푸스(Oedipus)>, 미디어: 공연아이덴티티, 클라이언트: 국립극단, 2011 <템페스트(Tempest)>, 미디어: 공연 아이덴티티, 클라이언트: 국립극단, 2014
텍스트는 일이 아닌 사람에 대해 질문하고 사람에게서 답을 찾는다. 이것은 벽이라고 느껴질 때, 마음을 탁 부려놓고 상대를 믿으면 벽은 문으로 바뀐다. 사람이야말로 최고의 텍스트다. 그래서일까. 텍스트의 작업에선 늘 사람 냄새가 난다. 확실히 스튜디오 텍스트는 성격이 분명한 것 같아요. 클라이언트의 생각도 있겠지만, 작업을 맡길 때는 스튜디오의 색깔을 믿고 맡기지 않나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일 이상적인 거라고 생각하고요. 초기 단계부터 그걸 구현해서 서로 얘기하거나 이쪽 방법론을 신뢰하고 가길 바라죠. 예전보다 파트너십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상대가 많아진 편이에요. 디자인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졌고요. 그래도 여전히 소위 일을 '처리'하는 '용역적 관계'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조직문화와 연관된 것 같아서 그런 점은 때론 아쉬워요. 갑을 관계나 용역 관계가 아니라 함께 한다는 인식이 좀 더 강해지면 좋겠네요. 보통, 저희가 수행하는 일의 주인이 디자이너가 아니다 보니 분명히 그 경계선은 있습니다. 디자이너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그 영역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맞아요. 하지만 문제를 좀 더 올바르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제에 대해서 공유할 부분을 넓히고 같이 고민하려는 태도가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멤버들이 공통점도 있지만 각기 다른 면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진우 디자이너는 선이 굵은 디자인을 잘해요. 생각한 게 있으면 밀고 나가는 추진력이 좋아요. 디자인할 때도 중심이 분명하고 주장하는 바가 뚜렷한 방향으로 잘 밀어붙이는 편이에요. 최세진 디자이너는 디테일이 강해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일러스트레이션 느낌이나 상상의 폭이 넓어요. 그러면서도 건축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서 공간을 잘 보고 그걸 표현하는 게 훌륭해요. 그런 차이가 스튜디오에서 같이 작업하는 이유일 것 같아요. 앞으로 텍스트는 어떤 방향으로 나갔으면 좋겠나요? 애초 스튜디오를 만들 때 김보일 디자이너와 얘기하던 것들이 있어요. 저도 프리랜서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어떤 강한 규율이 존재하는 조직은 생리에도 맞지 않고, 뭔가 지켜야 할 우리만의 디자인적 방법론을 고집하는 것도 지금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봐요. 그래서 '느슨한 연대감'이라고 생각해왔어요. 서로가 필요에 의해서 드나드는 플랫폼이면서 동시에 각자의 장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느슨한 공간이기를 바라요. 물론 그 사이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그것이 텍스트의 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겠지만, 그것이 목적이 되는 것을 염두에 두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저희 멤버들은 스튜디오에서 같이 일하지만, 또 각자 하는 일이 별도로 있기도 해요. 또 어떤 이의 경우에는 저희만이 아니라 다른 디자이너들과 같이 협업하기도 하고요. 지금 스튜디오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일들인데 이런 생각이 앞으로 구체화 돼서 좀 더 제대로 플랫폼적인 기능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올해의 작가상 2015(Korea Artist Prize 2015)>, 미디어: 전시 아이덴티티, 클라이언트: 국립현대미술관, 2015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이불(MMCA Hyundai Motor Series: Lee Bul)>, 미디어: 전시 아이덴티티, 클라이언트: 국립현대미술관,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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