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인터뷰] “디자이너와 AI의 공존과 경쟁” - 인공지능 시대의 창의성과 디자이너의 역할 탐구, 조영식 교수 | 조회수 | 688 |
---|---|---|
새롭게 펼쳐진 인공지능의 시대. 인공지능은 우리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현재와 미래가 중첩되고,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져버린 인공지능 시대의 변화 속에서 디자이너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혼란과 변화를 겪고 있는 디자이너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조영식 교수는 위협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인공지능의 시대에서 인공지능이 디자인 분야에 미칠 영향과 그로 인한 기회와 위협에 대해 심도 있게 분석한다.
인공지능 시대에서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창의성을 발휘해 나가야 할지 탐구하는
AI와 창의성, AI와 디자인 교육부터 AI와 디자인 프로세스, AI 디자인의 한계, AI와 디자인 제조, AI와 디자인 진화, AI와 디자인 미래까지 AI와 디자인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 책은 AI가 디자인에 미칠 파급효과와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이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준다.
책을 쓴 조영식 저자는 이화여자대학교 디자인학부 산업디자인 및 디자인대학원 디자인매니지먼트 교수로, 서울대학교 산업미술과를 졸업하고, 영국 드몽포트대학교(Demonfort University)에서 산업디자인 공학석사를 마쳤으며, 서울대학교에서 공업디자인전공 박사학위를 수료했다. 대학 재직중에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University of Cincinnati)의 산업디자인학과에서 방문교수를 지냈다. 한국디자인단체총연합회의 사무총장을 역임한 그는 서울시 환경디자인 심의위원 및 한국디자인진흥원 자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산업정책연구원의 디자인경영 자문 위원과 한국철도공사 디자인 전문위원, 삼성전자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조영식 교수는 디자인과 인공 지능 및 디자인 판단에서의 의식과 잠재의식의 차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사회혁신과 디자인적 사고>(2021), <위대한 디자이너의 철학과 영향력>(2017), <시간을 이긴 디자인>(2016), <인간과 디자인의 교감>(2008), <제품기호학: 제품에 얽힌 기호이야기>(2006)가 있으며, 역서로는 <녹색위기>(2011) 등이 있다.
조영식 교수
Q.
알다시피 인공 지능은 이전의 기술 혁명들을 덮어버릴 만큼 엄청난 파장과 영향을 불러 일으키는 이슈로, 교육적 차원에서 이를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그 파장이 불러올 결과가 다른 분야보다 더 심각할 것으로 예상되어 서둘러 집필을 하게 됐다. 물론 나 자신도 초기에는 인공 지능 관련 프로그램 몇 가지를 쓸 수 있는 정도의 얄팍한 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집필을 하면서 느낀 다양한 경험과 관련 전문가들의 대화를 통해 보다 더 거시적으로 인공 지능의 디자인 활용에 대한 식견을 갖게 됐다.
Q. AI의 도입으로 인해 디자인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변화를 꼽는다면.
실 예로 학생의 이야기를 들 수 있겠다. 현재 나는 디자인 대학원에서 디자인 경영 관련 교과목을 강의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실무에서 중간 관리자로 일하고 있거나, 소규모 디자인 비지니스를 운영하고 있다. 학생 중 한 명이 국내의 대표적인 섬유회사의 패턴 디자인 팀장으로 근무 중인데, 지난 해까지만 해도 5명의 팀원이 근무하다가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도입으로 올해 초 4명이 퇴사하고 본인이 혼자 5명의 디자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중이라 전해 들었다.
예상했던 대답이기는 했지만, 인공 지능 도입 전과 도입 후의 디자인 생산성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으며, 최종 디자인 의사 결정이 다소 힘들지만 이 또한 인공 지능과의 협업으로 내년의 트랜드 예측을 통해 최종 제품 출시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이러한 변화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생각되며 경영적인 측면에서 매우 매혹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급격한 디자이너의 감소 추세가 디자인 산업 전영역으로 확대되어가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변화가 아닐까 생각된다.
Q. AI시대에서 디자이너의 창의성은 어떻게 유지, 변화되어야 할까.
물론 인공 지능에 대해 적대적 생각을 가지라는 주장은 절대 아니다. 디자인 결과물을 필요로 할 때, 대부분은 ‘미드저니’ 혹은 ‘달리’와 같은 생성형 인공 지능 기반의 디자인 프로그램을 활용하게 된다. 이들 모두는 엄청난 양의 빅데이터를 스스로 조합해 새로운 디자인 결과물을 제시하게 되는데, 이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인공 지능의 창의성은 기존의 아이디어에 추가적으로 기존의 아이디어를 결합(하이브리드)시켜 이종 교배의 형식을 취하는 구조다. 물론 인간인 디자이너의 창의성도 두가지의 이미지 혹은 데이터를 이종 교배시켜 새로운 창작물을 생성함으로 원리는 동일하나, 인간이 사용하는 두번째의 이미지 혹은 데이터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수록 훨씬 더 창의적일 수 있다. 인간의 창의성과 인공 지능의 창의성, 혹은 기계적 창의성의 생성 메커니즘이 이 부분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이게 된다.
그럼 두번째 데이터를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남게 되는데, 이는 단연코 ‘영감’이다. 영감은 인공 지능이 아직까지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영역이다. 영감은 여행에서, 예술 작품의 감상에서, 사람들과의 다양한 대화에서, 새로운 경험에서 다양하게 생성된다. 인간의 영감에서 비롯된 새로운 아이디어와 데이터는 인공지능이라는 커다란 강물로 합류되어 또다른 기계적 창의성을 유발하는 구조인 셈이다. 인공 지능은 특정한 질문에 대해 매우 체계적이고 설득적인 답을 제시하는데 최적화되어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영감이 무엇인지는 알려주지만 영감에 의한 창의적 결과물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모짜르트 교향곡 25번 G단조의 음악을 듣고 그 영감을 통해 2인승 스포츠카 스타일의 자동차를 디자인해 달라고 인공지능에 주문하면 그 답을 구할 수 없지만, 자동차 디자이너는 이것이 가능하게 할 수 있다. 내가 만나본 유명 디자이너는 실제적으로 형태를 구상할 때 이런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두번째, ‘얼마나 창의적인가’라는 창의성 판단의 여부에 있어서도 인간의 평가 방법과 인공 지능의 평가 방법에는 현저한 차이가 난다. 인간의 평가는 효과에 맞춰져 있고 인공 지능은 효율에 맞춰져 있다. 효율에 대한 판단은 기계적 계산에 의해 최적화될 수 있지만, 효과는 효율과 더불어 정성적인 요인이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창의적 디자인이 트랜드에 맞게 특정 시장에서 특별한 소비자들에게 얼마나 많이 어필할 수 있으며, 특정 기간 내에 얼마나 많이 판매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인공지능은 비교적 적절한 답을 제시할 수 있지만, 하나의 제품이 사회적, 문화적, 생태적, 지역적으로 어떤 효과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광범위한 영역을 모두 아우를 수 없다. 이는 가치의 문제이고, 유연적이며, 궁극적으로 철학적 영역이기도 하다.
또한, 이는 집단 지성으로만 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로서 창의성에 대한 판단 역시 인간이 아직까지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효과를 전제로 창의성에 대한 기계적 판단이 우위를 점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예측은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의견이기도 하다.
Q. 감성적인 부분에 있어 AI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특정 사람은 빨간색에 대해 매우 열정적인 감성의 느낌을 가지지만, 어떤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빨간색에 대한 경험과 기억이 잠재의식의 한 영역에서 따뜻한 자극으로 남아있으면 빨간색을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기분 좋은 감성을 가지게 되고, 빨간색에 두려움을 느꼈던 사람이라도 어떤 계기로 인해 편안한 감성을 느낄 수도 있다. 한 개인에게서 발현되는 수많은 감성은 일관성도 없고, 인과 관계가 불분명하며, 순간적으로 변화하는 감성을 기계적으로 측정하기도 매우 어렵다.
일반적으로 감성은 한 개인이 오랜 경험으로 축적되어진 정신 활동의 총체로 보아지기 때문에 더욱 그 실체를 파악하기 힘든 영역이다. 물론 인공 지능은 특정 대상에서 느껴지는 감성을 일시적으로 측정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동일한 대상이 환경과 시간에 따른 왜 다른 감성으로 전달되는지를 규명하는 것은 인공 지능에 있어서 매우 어려운 과제다. 특정 대상에서 느껴지는 감성 데이터를 수집하여 그 속성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이는 팩트에 관한 것이지 마음속 깊이 머물러 있다가 순간적으로 발현하는 감성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아직 요원하다.
따라서 인공 지능이 이러한 인과 관계를 규명하여 감성에 맞는 대상을 재현하는 것은 당분간 힘들어 보인다. 한 개인이 경험하는 모든 오감들을 기록하고 저장하여 이들의 상관관계를 수치적으로 계산해 규명할 수 있다면 우리는 감성의 표현을 인공 지능에게 위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 인공 지능의 발전 속도를 감안해 본다면 감성 발현의 기저를 완전히 규명할 수 있는 날이 곧 오게 될 것이며, 이는 단지 시간의 문제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Q. 인공지능으로 인해 디자인 교육에 있어서도 변화가 필요할 텐데, 어떠한 변화가 추구되어야 할까.
디자이너는 전통적으로 반복적인 조형 교육을 통해 조형적 지각 능력과 표현에 관한 감성 지능을 강화해 왔다. 마치 풍선효과와도 같이 한 인간은 특정 지능이 발달하면 여타 지능이 상대적으로 미약한 것이 보편적이다. 감성적 디자이너는 우뇌에서 관장하는 직관, 유추, 상상, 통찰에 매우 우수한 지능을 지닌 반면, 좌뇌에서 관장하는 수리, 논리, 분석에는 상대적으로 열세를 보인다. 반대로 좌뇌가 발달한 디자이너는 상대적으로 조형 감각과 표현이 다소 취약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공 지능은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한 개인의 부족한 지능을 끼워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본인이 취약한 지능을 퍼즐을 끼워 맞추듯 인공지능은 완전한 지능을 갖출 수 있는 엄청난 협업 지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 교육의 과정에서 각자가 지닌 탁월한 지능을 확인할 수 있는 교육적 기회를 부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며, 이와 더불어 본인이 부족한 지능을 확인하는 것도 디자인 교육의 과정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본다.
수리적 지능이 부족한 디자이너들에게는 통계, 수치 계산과 관련한 인공지능과 협업할 수 있는 경험을 디자인 교육에서 제공하고, 표현 및 공간 지각 지능이 다소 부족한 디자이너에게는 표현에 최적화되어 있는 다양한 생성형 인공지능의 활용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또한 인공 지능은 원하는 결과를 신속하게 전달하는 것에는 최적화되어 있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결과가 도출되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마치 수학 문제를 풀 때, 학생들이 해답지만을 먼저 보고 풀이 과정에는 관심을 갖지 않을 수도 있는 것과 같이, 디자인 교육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예상된다.
따라서 디자인 교육자들은 산악 등반에 있어 쉐르파의 역할을 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산의 정상에 서는 것이 아니라 산에 오르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디자인 교육이라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자 스스로 인공 지능과의 협업을 통해 최적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교육과정의 개편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으며, 이 또한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어 보이지 않는다.
Q. 디자이너들은 어떻게 미래를 대비해야 하나.
문제는 시간이다. 인공 지능의 발전 속도가 디자이너의 변화를 기다려 줄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앞선다. 인공 지능의 시간이 과거의 일년이 현재의 일주일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향 후 몇 년 후에는 아마 일년의 속도가 몇시간으로 인식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바로 지금 이에 대해 준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디자이너가 활용 가능한 생성형 디자인 프로그램은 이제 주위에 널려 있다. 본인의 업무에서 단순한 업무를 대신할 수 있는 인공지능 프로그램 몇 가지를 찾아보고 먼저 사용 방법에 대해 익숙해지기를 추천한다. 이와 같은 경험이 점차 확장되면 자연스럽게 인공 지능과 친해질 수 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인공 지능에 위임하고, 본인은 영감에 기반한 보다 창의적인 업무에 시간적 자산을 활용하며 자신의 부족한 지능을 대체해 주는 협업 파트너로 인공 지능을 적극 활용할 것을 추천한다. 물론 이 업무의 유효 기간도 얼마가 남아 있는지 잘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인공 지능이 영감에 의한 창작의 영역까지는 들어오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본문 이미지
Q.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이러한 부정적인 시각도 팽배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인공 지능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부정적인 면이 많다면 이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긍정적인 면이 많다는 것이다. 디자이너가 본인의 역량을 훨씬 뛰어 넘어 경쟁력 있는 디자이너로 변신시켜 줄 수 있는 힘이 인공지능에 있음을 확신한다. 절대로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 경험하면 할수록 신비하고 재미있는 기술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속담이 있듯이 인공 지능은 피할 수 없으니 많이 즐기기를 권한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인공 지능에 하루만 투자하면 인공 지능의 첫 관문이 쉽게 열린다.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물론 디자인 교육의 목적은 “인공 지능에 의한 디자인”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한번 확인하고 싶다. 필요할 때에 언제든지 수십명의 디자이너, 기술자, 통계학자, 마케터, 경영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경험을 학생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 계획이다.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 |